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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28. 2016

원죄론

생각해보면 낮은 지위로 인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유 때문에 나는 또 공황이 재발한 것일까? 그럼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왜 공황이 안 왔을까? 다른 사람들은 공황 대신에 극심한 불안 또는 우울, 심하면 강박증이나 파괴적인 망상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


종류는 다르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똑같다. 나는 공황으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기에 공황이 다시 온 것일 뿐이다. 다들 저마다 입장에서 가장 힘들 수 있는 느낌을, 그것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어떤 존재가 창의적으로 끄집어 낸 것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목적인 '고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고통의 목적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 경고는 이렇다. ‘지금 나는 제대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아예 없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내 마음이 계속 불안한데 이런 느낌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도 싫다.’


이런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 의미의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번. 내 앞 일에 대한 불안

2번. 불안에 대한 불안


우리는 1번에 대한 이해는 쉽게 할 수 있지만 2번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이 많거나 혹은 마음 속 불안이 커지면 반드시 이상 증상은 나타난다.


우리가 사는 것은 '의무'의 연속이다. 만약 우리가 건강하게 자라기만 해도 큰 사랑을 받는 아기처럼 의무가 거의 없다면 우리에게 공황이나 우울증 같은 것들이 왔을까? 우리에게 원죄론과 같은 큰 재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삶이 전부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야할 일 투성이이다. 


아무튼 여러 증상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어 우리가 변화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인간은 이렇게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자율적으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에 내가 당시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재미가 있어서, 내가 먼저 원해서 공무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취업준비를 했다면 공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평소부터 내 마음의 평화를 사랑해서 명상도 하고 요가를 했으면 공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이런 일들을 꼭 누가 시켜서, 혹은 미루다가 내가 죽을 것 같은 불안을 느껴면 그제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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