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새 Sep 28. 2016

타나토스

나는 2년 만에 정신과를 찾았고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상태가 많이 안 좋았기에 약의 개수가 더 많아졌다. 나는 전역을 하고 학교에 복학하는 동안 나태하게 지냈다. 내 삶의 의무가 버거워서였을까? 나는 미래를 생각하기 싫었고 그래서 매일 잠만 잤던 것 같다. 게다가 공황장애 약은 사람을 더 나른하게 만들어 계속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준다. 


나는 잠이 주는 쾌락을 느끼면서도 '나는 이대로 썩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알코올 중독자와 삶이 비슷했던 것 같다. 술 마시고 나면 속도 안 좋고 너무 힘든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보기 힘들어서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건 또 살일 빼고 싶은 사람이 밤마다 폭식을 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잠을 많이 잘 수 있어서 좋고, 술을 먹고 야식도 엄청 먹어서 좋겠지만, 그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 것일까?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파괴, 죽음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삶의 비극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폭력적이고, 슬프고, 공포 가득한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은 슬픈 발라드를 좋아한다. 


우리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주인공이 죽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을 대변하는 문학이 다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피엔딩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나는 우리 마음 속에도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피엔딩을 원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의사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어떤 결말이 더 강렬하고 인상적인지, 더 매혹적이고 여운이 남을지를 고려해서 글을 쓸 뿐이다. 


우리는 비극에 맞서 싸워야한다. 보다 신선한 행복 시나리오를 개발하여 내 마음 속의 작가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구상한 시나리오가 비극적 시나리오보다 더 약하다면 우리는 비극 소설의 주인공처럼 계속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죄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