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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28. 2016

의사선생님에게 실망

처음 대학 병원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유명한 대학교수님이라고 하셨다. 흰 머리가 많으신, 연세가 좀 잇으신 분이셨다. 그 분은 내가 군대에서 3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걸 알고 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내가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분은 내게 젊은 사람이 의지가 박약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을 듣고 많이 서운했다. 그 분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지냈는지, 이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았는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러면서 저렇게 쉬운 몇 마디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너무 미웠다. 


공황은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많은 연예인들이 전부 다 의지가 박약해서 공황이 왔을까? 덩치도 크고 정말 강할 것 같은 천하장사 이만기씨도 한때 공황으로 힘들어했다. 공황은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때(2002년)가 공황장애가 아직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서였는지 의사 선생님도 공황에 대해서 정확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개인병원 치료 받을 때 의사선생님은 친절하긴 했지만 역시 공황에 대한 이해는 많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의사 선생님은 항상 '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가 어떤 주에는 많이 불안했다고 하면 약을 세게 타주셨고, 너무 나른하다고 하면 약을 줄이셨다. 너무 우울하다고 하면 항우울제를 섞어주셨다. 이건 너무 기계적이지 않은가? 


내가 밖에서 어떤 어려운 일을 겪고 있고, 인간관계는 어떻고, 내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불안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셨다. 그저 내 지금의 기분 상태와 그에 따른 약 처방에만 집중하셨다. 나도 이해는 한다. 개인병원도 환자가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의 우울하고, 불안하고, 미칠 것 같은 이야기 다 진지하게 들어주면 의사 선생님도 너무 정서적으로 힘들지 안을까? 그래서 일부러 환자들과 거리를 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치료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약 먹을 때 증상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것 말고는 근본적으로 어떤 진전이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된 사실은 공황은 나의 잘못된 사고방식, 행동패턴때문에 더 촉진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데 약물치료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수정없이, 단순히 증상만 없애고, 그 증상이 또 생기면 또 없애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만약에 약을 먹는 것이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그렇게 효과적이었다면 나는 재발 이후에 10년이 넘게 약을 먹었을까?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실망감이 커졌다. 중요한 것은 의사선생님은 내가 겪는 고통을 잘 모른다는 것이고, 그것이 대화를 할 때마다 미묘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의사선생님에게 기대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병원에는 그저 어쩔 수 없이, 약만 타러 갔다. 


의사선생님들은 학교 다닐 때 너무 공부만 했던 것일까? 그래서 실제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인간의 정신을 생리학적으로만 바라보면 저런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나는 최소한 의사선생님들보다 인간 정신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확신했다. 그 생각이 때로는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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