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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Oct 02. 2016

통제를 벗어나

나는 여전히 지하 깊은 곳이나 사람이 많아 답답한 백화점 같은 장소에 잘 가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갇힌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특히 심하였다. 비나 눈이 오는 것도 무서웠다. 비나 눈은 태양을 가리고 구름을 동반하기에 그것도 내가 갇힌 거라고 무의식은 생각했던 것 같다.


공황이 있는 사람들은 특정 장소를 피하는 광장공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들은 공황이 오고 난 뒤부터 비행기, 배, 기차 같은 것들을 갑자기 못 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장소들의 공통점을 가만히 살펴보면 전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곳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비행기를 한번 타면 일단 사람들은 꼼짝없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왜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황이 올까? 나는 공황을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공황장애가 크게 늘어난 것은 20세기이후이다. 인류는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연 현상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도 생존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의식도 성장했다. 생명도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합리적이 되었다. 신이나 운명 따위는 없다고,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다 좋은데 그런 합리적인 배경 속에서 사람들의 정서적인 문제가 심해졌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의 불안, 두려움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수명은 100살 넘게까지 연장되었지만 평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죽음뿐만 아니라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나는 그 이유가 사람들의 통제력이 늘어감에 따라 재산이나 생명 등에 대한 욕심이 커지고, 그 모든 것에 다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에는 자신과 가까운 가족의 생존 이외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인간의 통제력이 늘어감에 따라 자신의 운명과 타인의 삶에도 구체적인 통제를 행사하려고 한다. 심지어 자식의 수학 미분 방식이나 직장 동료의 애인, 애완 동물의 친구까지도 다 통제하려고 한다. 그러니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선사시대에는 죽음과 사냥을 비롯하여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최소한 심리적으로는 매우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어차피 내가 신경 쓴다고 해결될 일이 하나도 없으니깐 외부적인 것에 관심을 다 끊었다. 모든 골치 아픈 일들은 나를 뛰어넘는 존재가 알아서 한다. 나를 이런 류의 무책임은 참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렇게 잘난 척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았지만 삶의 심오한 부분은 하나도 극복하지 못했고, 심해나 우주의 공간은 1퍼센트도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의 불행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우리는 누구의 삶도 구원하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자연을 벗어날 수 없으며 아무것도 감히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자기의 행동 말고는 아무것도 통제한 적도 없었다. 놀라웠던 과학 때문에 그저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다는 일종의 착시현상에 속에 산 것이다. 이제는 그런 과학도 시들해져 간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다시 선사시대의 마인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1퍼센트라도 자신의 운명이나 주위의 모든 것들을 통제하려는 습관을 버린다면 무한한 평화로움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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