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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Oct 02. 2016

공황 재발

공익 후반으로 갈수록 내 생활은 더 이상 신나지가 않았다. 이제 동사무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다 파악이 되었다. 매일 같은 하루의 반복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전에는 잘 몰랐는데, 공무원들과의 거리감이 조금씩 느껴졌다. 물론 그들은 나를 좋아했지만 그들만의 모임과 문화에는 근본적으로는 끼여들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공무원들은 공무원들끼리 연락을 주고 받고 비밀 연애도 하고, 동호회 활동도 같이 했다. 중요한 회식 때에는 공익을 부르지도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익은 그저 공무원들의 도우미일 뿐이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던 정규직 아닌, 공공근로나 계약직들도 나와 비슷한 차별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공무원인척 하는 것을 좋아함을 깨닫고 내가 그들의 자리가 탐이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란 책에서 불안은 ‘낮은 지위’에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나는 학창시절까지 사람들이 가진 지위에 대해서 한 번도 심각하게 의식한 적이 없었는데 여기 동사무소에서 지위의 차이를 몸소 실감하게 되었다.


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도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난 공부를 몇 년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내 대학교 학점은 1점대였다. 그 학점 감당하고 제대하면 대학 졸업도 해야 하는데 앞이 깜깜했다. 공익생활 한창 열심히 할 때는 군인이라는 신분이 나를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보호를 해줬지만, 제대가 가까워지면서 생각이 점차 복잡해졌다. 그때부터 불안이 점점 커져갔다.


제대 두 달 전, 도로 한 복판에서 차 운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순간 어질하면서 또 공황이 왔다. 그 상황이 무서워서 공황이 온 것일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던 불안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공황이 제대로 터진 것 같다.


나는 또 한동안 패닉상태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집에 오면 방 문 닫고, 불 끄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난 그때 공황이 재발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짜증이 나서 주위 사람들도 많이 괴롭혔던 것 같다. 내게 무슨 말을 걸어도 대답도 잘 안하고, 인상만 찌푸렸다. 그때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 요즘 어디 아프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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