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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28. 2016

엘리베이터에 갇힌 날

나의 공황은 폐쇄공포증을 동반했다. 나는 자주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무서운 상상을 하곤 했다. 심지어 웬만한 층수는 일부러 계단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만원인 엘리베이터에 실제로 갇히는 일이 일어났다. 안 그래도 사람들에 치여 답답한데 정전까지 되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내가 기절하거나 숨이 막혀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 짧은 순간 어떤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이제까지 내가 엘리베이터에 가지고 있던 추락할 수도 있다는 둥의 무서운 생각들을 여기서 계속 할 경우, 빠져나갈 수 없는 나는 정말 여기서 죽고 말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실은 이 곳은 안전하며, 30cm 옆 밖과 이 곳이 다른 공간이 아니라 같은 공간이다. 사람들이 많아 답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재미있다.’ 이런 평소에는 한번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들을 그 순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밖에서 경비아저씨가 사람 부를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얼마나 더 기다렸는지 모르지만 그때부터는 그 상황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광장공포증(특정한 장소에 가기 두려워하는 것. ex, 비행기, 엘리베이터, 사람이 붐비는 백화점.. )을 동반한다. 인지행동치료를 할 때 의사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장소일수록 더 직면하라고 한다. 그러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곳에 실제로 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나는 20대에도 비가 오는 날 운전하는 것에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책의 내용만 읽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 밤 혼자 고속도로를 탄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에 올라선 이상 유턴은 사실상 힘들다. 그렇게 나를 사지(?)로 몰고 가서야 그 두려움은 사라졌다.


이런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과정들을 경험하고 나서 나는 이 세상에 실제로 두려운 장소나 대상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정말 두려운 것이 있다면 우리의 두려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실제로 고통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낭가파르바트 정상(히말라야, 8.126m)에서 쓰러지지 않으려면 내 자신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느끼고 싶다. 지금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준다.


- 라인홀트 메스너의 ‘검은 고독, 흰 고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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