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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28. 2016

의무 부정

학교 공부는 하나도 못했다. 학교 공부를 하려고 하면 공황이 오려고 했다. 신기한 것은 학교 책이 아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잡으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자율학습 시간에는 인문학 책을 읽었다.


나는 대학입시도 거의 포기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미래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졌다. 나는 당시 고등학생으로서 당연시해야 할 모든 ‘의무’와 ‘미래’에서 벗어나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현재에 가진 ‘의무’나 ‘미래’에서 벗어날 때 (일시적으로나마) 공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공황이 찾아오면 모든 상황이 stop 된다. 그저 멍때리게 된다.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어떤 계획을 세운다든가 이미 주어진 일도 실천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공황은 항상 인생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내 인생 전반적으로 내가 어떤 의무에 시달릴 때면 어김없이 공황이 찾아왔다. (지금은 공황으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니깐 어릴 때처럼 심하게 겁먹지는 않는다) 녀석은 내게 말한다. “넌 지금 너무 미래에 사로잡혀 있어. 일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인생이 뭐 그리 긴 줄 알아? 내가 왔으니 현재를 즐기면서 편히 쉬어!”


그럴 때마다 나는 당분간 나태해지기로 결심했다. 어마어마하게 할 일이 많음에도 그걸 다 내려놓고 손 놓고 있을 때 묘한 쾌감이 찾아온다. 그 느낌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공황이 죄책감도 막아준다. 온전한 휴식은 공황이 선사하는 것이니 난 그에 감사해야 할까? 마음은 평화롭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일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 불 보듯 뻔하고 그게 심해지면 또 공황이 올 것이다. 이건 정말 잔인한 운명이다.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본다. 내가 분명 해야 할 일들은 있겠지만 ‘나를 매섭게 조여가면서까지 그 일을 억지로 하지는 말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또 즐겁게 잘 하지 않았는가?’ 일이 일로 인식되면 스트레스이다. 그러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할 것이 있더라도 ‘그 일이 하고 싶을 때까지 최대한 기다렸다가 하자!!’ 그런 관념이 공황을 최대한 늦쳐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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