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할 때는 공황이 오더라도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조선소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나았다. 왜 여기서는 공황이 잘 오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상큼하고 예쁜 20대 초반 여자 애들이 많아서 조선소 영감님들하고 일하던 때보다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쓸 최소한의 용돈은 필요했기에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나는 인생을 피하고 피해서 여기까지 왔기에 이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우리의 정신질환이 어떤 방향으로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인간이 움직일 수 있고, 그 움직임의 가능성을 예상할 때 (발전도 가능하지만) 정신질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사지가 마비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떤 정신활동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공황도 없을 것이다. 인생을 피하는 것도 어떤 방향의 ‘움직임’이고, 그 피함을 위해서 조선소 있을 때 내게 공황이 온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조선소에서 공황이 유독 심했던 이유는 그 힘들었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여지가 많아서였을 수도 있다.
나는 여유 시간에 작은 사업을 시작하였다. 여기 맥도날드에서는 내가 사업으로 성공하기 전까지의 마지노선이므로 더 이상 갈 곳이(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사지가 마비된 사람처럼 심리적 데미지가 크게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생에서 만약 대안이 전혀 없다면, 그것을 무의식이 인정한다면 최소한 공황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움직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 이상(理想)에 대한 기대에서 크게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초등학생 때 항상 대통령이 꿈이었다. 중학생 이후에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가 혹은 사상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컸다. 그 이상은 나이가 들어도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했다. 이런 나의 큰 꿈이 내 무의식에 더 많은 움직임을 요구했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공황이 터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남들보다 머리가 좋고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도 한 번에 합격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머리가 나쁜 건지 결국 끝까지 시험 불합격이었다. 그리고 시작한 사업도 엄마가 사무실 하라고 보증금에 공사비까지 다 대줬는데 내 뜻대로 잘 안되었다. 인도의 간디는 ‘행복은 의도적으로 욕심을 줄이는 데서만 온다’고 하였는데, 단순한 행복 차원이 아니라 진짜 생존을 위해서라도 모든 기대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의지로 가능할 것 같았다. 불교에서도 항상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기대는 또 다른 움직임을 부르고 그 움직임은 결국 정신질환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