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했고,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그저 상황에, 의무에, 공황에 이끌려만 다녔던 것 같다. 당시 다니던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도 원래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하기 싫을 때가 많았다. 아침 6시 10분 어김없이 알람소리가 귀가 따갑도록 울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자고 싶어 알람을 10분 뒤로 다시 맞춰 놓는다. 그래도 별 수 없다. 나는 이 알람소리와 함께 무거운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나른한 잠에서 깨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세수를 하여야 한다. 그 곳에서 나의 하루는 차디찬 냉동실에서 감자 10박스, 불고기 2박스, 상하이 1박스, 텐더, 너겟.. 무거운 식재료를 주방으로 옮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냉동실 안에서 하는 이 작업은 진짜 춥고 서럽다. 이 모든 의무의 시작을 친절히 암시해주는 알람소리는 분명 내 고통의 진원지가 확실하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힘들고 복잡한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이 또 있을까?
계속 해도 재미없는 이 일을 과연 나는 즐겨야 하는 걸까?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라인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아침마다 지옥 같은 알람 소리에 억지로 일어나서 무거운 눈꺼풀을 삼분의 일만 뜨고서 세수를 하고, 의식의 오분의 일 정도만 가동한 채 의미 없이 돌아가는 라인을 멍 때리듯 바라보며 꾸역 꾸역 겨우 버티면서 일했다. 이렇게 일의 시스템 자체가 혹독하고 의미가 없는데 내가 그 일을 좋아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보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있었던 유대인들의 삶은 훨씬 더 지난했다. 그 곳에서 수감자들은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티며 장비도 제대로 없이 혹독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작업이 없는 날에는 맨땅의 흙을 파서 다시 제자리로 묻는 일도 하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곳에서의 시련은 맥도날드나 공장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지옥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런 말 들을 가슴에 새기고, 그날 날씨가 좋은 것에 감사하고, 저녁 노을을 음미하고, 심지어 그 곳에서의 노동 자체도 재미있게 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일 하면서 유머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작가는 ‘그렇게라도 웃지 않으면 거기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모두가 죽어나가야 하는 미친 상황 속에서도 노력으로써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무거운 의무와 관련이 있고 내가 그 의무에 관심이 없거나, 의무를 소홀히 생각한다면 또 다시 공황이 올 것이다. 어느 날 내 방이 너무 어지럽혀져 있으면 ‘아~ 지저분한데 치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것이고, 리포트 제출일을 확인하고 기한이 얼마 안 남았다면 ‘이제부터 시작해봐야지!!’이런 생각들이 들것이다. 결국 우리 삶은 다 해야 하는 일 투성이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 의무를 행하느냐를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원해서 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하느냐? 이 방법뿐이다. 만약 현재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없다면 부정적 흐름 속에 자신을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방식대로, 우리가 원해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찾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가 공황(또는 부정적 감정)에게 당한다. 고딩 때 영화 ‘비트’에서 태수(유오성)가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단 느낌이 들 때 ‘먼저 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해’란 말을 했었다. 이 말이 이 상황에 적당한 것 같다.
나는 단순히 내 일이 하기 싫어서 환경을 탓하며 그저 투정을 부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이 아르바이트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이건 내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일에 대한 시선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맥도날드 배달도 즐겁게 할 수 있고, 공장에서의 라인 작업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를 우리 삶이 ‘의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일들이 전부 재미있거나 흥미진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오후 5시에 맥도날드 출근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다 돼서 억지로 세수하고 일을 나선다면 나는 매일 부정적 감정에 끌려 다닐 것이다. 반면 그런 시간의 압박이 오기 전에 내가 ‘그래 아르바이트 가면 귀여운 애들도 있고, 운동도 되고, 용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식으로 먼저 삶에 기대를 해버리면 결국 인생 전체도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