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은 우리가 어떤 신체감각을 죽거나, 미치거나, 자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신호로 내 몸이‘잘못 인식했을 때’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반대로 일상의 작은 기쁨을 더 과장되게 잘못(?) 인식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렇다면 공황의 반대가 되어 우리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세뇌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진화 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터무니없는 믿음도 현실 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들로 자극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때로는 사실과 동떨어진 상징적인 믿음체계가 더 성공한다." 고 하였다.
어느 날 블로그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서로이웃’을 신청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님이 저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면 저도 꼭 방문할게요” 난 그것을 보며 ‘이 사람은 무슨 품앗이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걸까?’ 싶었다. ‘글의 정직한 내용으로 관심을 받아야지 이렇게 자기가 발품 팔면서 자기 포스팅에 댓글, 공감 수를 늘리면 그게 더 초라한 거 아닌가?’ 생각하였다.
호기심이 일어 그 사람의 블로그에 가 보니 그냥 일상 블로거인데 포스팅마다 댓글이 달려 있었다. 거기에 댓글 단 사람들도 그 사람과 같은 목적인 것 같았다. 일단 본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블로그 활동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서로 비슷한 입장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 다시 그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이번에 예전보다 댓글이 더 많이 달렸다. 나는 신기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포스팅에 달린 “참 좋아요” 댓글이 진정한 관심이 아닌 일종의 ‘조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만족해하는 것일까?
갑자기 그 사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뻔한 칭찬, 예의상의 덕담을 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나? 상대방이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좋은 말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가식적인 액션들도 우리 삶에 분명히 필요한 것 같다.
tv를 보는데 취업이 안 돼 우울한 캥거루족 여성이 나왔다. 그때 어떤 상담사가 그 분에게 “나는 예쁘다”를 자기 전에 10번 큰 소리를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단다. 나는 ‘그게 무슨 소용이지? 예쁘지도 않은 사람이 ‘자기가 예쁘다’고 낭독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그런데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기법들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심리 책에서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여성에게 ‘나는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본다.’ ‘나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즐겁게 대한다’ 라고 하루 두 번씩 큰 소리로 읽는 것이 기분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법은 상담에서 많이 쓰이고 있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심리학에서 많이 활용되는 ‘역설의도’도 사람들에게 거짓 ‘조작’을 주입한다는 면에서 위와 비슷하다. 땀 흘리는 것에 대해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땀을 얼마나 많이 흘릴 수 있는지 보여주겠어” 또는 글씨를 쓰려고 하면 손이 떨리는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지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테다” 고 거짓으로 말하게 하면 뇌는 그 말을 현실로 받아들여 그 사람들의 나쁜 증상들이 싹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뇌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액션들에 분별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 우리의 뇌는 멍청해서 우리가 말하는 대로 다 믿어버린다. 이렇게 멍청한 뇌를 속이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공황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