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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09. 2017

공황보다 빠른 행동

그 당시 7년을 알고 지냈던 친한 여자 후배가 내 전화를 받지 않고 나를 차단하였다. 그 아이는 나보다 먼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내가 그 아이에게 심적으로 너무 의지를 많이 했다.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그건 핑계였던 것 같고, 사실은 내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아무리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도 소용없었다. 일방적으로 차단당한 기분이 이렇게 비참할지 몰랐다. 그녀는 어떻게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 사건 이후로 내 공황이 훨씬 심각해진 것 같다. 조선소에서는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 편히 말할 내 또래는 없었으며,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인간관계의 단절이 공황을 가져온다고 확신했다. 내가 만약 술을 마실 수 있었더라면 나도 조선소의 노인들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을 것이다.


조선소 경비는 아침에 출근하면 그 다음날 아침까지 24시간 근무를 한다.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초소에 밤에 혼자 남아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이대로는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심리학자 윌리엄 글래서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있을 때는 불안이나 우울이 끼어 들 틈이 없다고 하였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약간 미쳤던 것 같다. 하루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는데 예쁜 여자가 복도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또 공황을 걱정만 하면서 하루를 보낼 것 같았다. 최소한 예쁜 여자와 이야기를 하면 내 의식은 온통 그녀에게 집중될 것이고, 얼마간은 공황이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일단 ‘살고보자’란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녀는 당황한 듯 하다가 결국 ‘알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최근 나에게 일어났던 힘들었던 일들을 전부 다 이야기했다. 공무원 준비 중이라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날 위로해주었다. 그 이후로 혹시나 그녀와 썸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그 다음날부터 도서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아직까지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히 공부할 장소만 날아갔을 것이다. 내 인생에 기억에 남을 만한 민폐였다.


그래도 나는 그녀로 인해서 공황이 더뎌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당시는 내게 예쁜 여자만큼 공황에 맞설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심한 공포와 맞설 수 있는 것은 내가 더 심하게 좋아하는 자극적인 어떤 것들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중학교 시절 공황이 왔을 때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은 사춘기 때 가장 환장했던 브랜드 옷과 아이템들을 다 끄집어내어서 만지고, 냄새 맡고, 몸에 갖다 대 보면서 자극했던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온통 다 쏠려있던 내 관심을 다른 어떤 자극적인 것들로 억지로 옮겼던 것 같다.


내 행동은 항상 생각보다 빨랐다. 그것이 내 유일한 전략이었다. 일단 회사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사실을 블로그에 적기 시작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서예학원에도 등록했다. 창원에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도 가입했다. 그 곳에선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같이 맥주도 마시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사회적 계급을 가리지 않는 따뜻한 보헤미안적 모임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 그래프가 아주 조금씩 상승했던 것 같다.


독서 모임 처음 가서도 내가 했던 행동은 예쁜 여성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처 물어보고 커피 마시자고 했던 일이었다. 다행히도(?) 그 쪽지를 받은 여성이 내 제안에 알겠으니깐 둘이서 만나자고 하였다. 난 그때 갑자기 도서관 그녀와의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르면서 ‘그냥 다음에 모임에서 보자’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이제야 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아무튼 공황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어떤 일이든 저지르고 나서 수습하는 편이 낫다. 내 의식이 불안하거나 우울한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거칠게 행동하다보니 날 떠났던 전 여자친구와 내 후배 생각도 덜 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공황보다 더 자극적인 어떤 것에, 공황보다 반 박자씩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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