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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14. 2017

미래 부정


이 날도 습관처럼 내 사업과 건강 등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엄마와 마트 장을 보고 있었는데 그날 날씨도 꾸릿꾸릿 하고 사람들도 숨 막힐 듯 많아 현기증이 났다. 공황이 올 것 같아 불안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영감이 스쳤다. 지금 이 공간에서 숨막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지금 엄마랑 마트 장보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오늘 하루가 내 삶의 전부라면, 내가 그 사실을 안다면 나는 어떨까?’ 하며 찌릿해 했다. 이런 생각이 나를 관통하고 나서야 깊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실제로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공황이 있는 나에게 계속해서 도움이 되었다.


나는 평소에는 늘 미래를 걱정하다 공황이 한 번씩 찾아오면 그제야 ‘그래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미래를 의식에서 밀어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의 모든 불안, 분노, 우울 등 안 좋은 감정들은 전부 ‘미래’를 깊게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 열반, 즐거움 등은 내 의식이 현재에 집중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한다. 이런 골치 아픈 일들을 해야 할 암묵적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몸은 미래를 위해 움직이지만 내 정신은 현재에만 머무를 수 있다. ‘just do it’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노트 필기에만 몰입하다가 공부를 반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즐겁게 현재를 즐겼더니 음악, 스포츠, 일을 잘하게 되었다는 주변의 얘기도 자주 듣는다. 미래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오히려 더 일이 잘 풀린다.


아무튼 나는 이날 마트에서 얻은 영감을 증발하듯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이후 집에 서 명상을 할 때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이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이렇게 소리 내어 내 의식이 미래로 슬며시 빠져나가는 것을 저지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내게 변화가 나타났다. 세상은 어차피 ‘의무’로 나열되어 있기에 미래를 신경 써야 하지만 이제 나는 놀라울 정도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내가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하였다. 어떤 때 나는 미래와 현재가 완전히 분리된 것 같아서, 내일 내게 무슨 사고가 생긴다고 해도 현재에 흐트러짐이 없을 것 같았다.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의 ‘원더풀’ 이란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시간의 분절성, 현재의 독립성에 대해서 공감했다. 루게릭 병에 걸려 시한부의 인생을 사는 책의 주인공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게 밝은 미래란 없다. 그러나 밝은 현재는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어린 아이처럼 웃는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데 며칠 더 살거나 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작가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군가 말했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말했던 이의 심정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미래는 현재와 서로 아무 관련성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오직 이 순간만을 살고 있으며 그 독립된 공간 속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이 다 스며들어 있는 것이리라.






" 누군가 자네를 앉혀놓고 자넨 곧 죽는다고 말했다고 생각해봐.

그 무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순식간에 자넨 삶을 다르게 보게 될 걸세.

하찮은 물 한 컵이나 산책이라도 감사하게 될 걸.

그렇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르는 행복에 살지.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것 때문에 정말 삶에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이지.

물 한 컵 마시면서 진정으로 즐기지 못해. 삶에 감사하지 않는 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어 "


영화 쏘우 2 中. 찍쏘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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