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를 적기 시작하면서 내 정체성도 찾아갔다. 과거의 나는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내 관심은 외부에 있었다. 특히 여자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상대가 예쁘든, 안 예쁘든, 누구를 만나도 집착했다. ‘내 성격이 원래 여자에게 집착을 잘 하는 성격인가?’하는 걱정도 많았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집착할까봐 걱정부터 하였다. 나는 왜 여자에게 집착했던 것일까? 이런 내 피곤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자와 사귈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외모와 내가 썼던 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자들의 일부는 내 외모와 돈을 좋아했던 것 같다.
공익시절 나와 별로 안 친했던 선임이 내 외모를 “평균보다 조금 이상” 이라고 했다. 난 지금까지 그것이 객관적 평가였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나는 대학교 때 동기들과 비교해서 돈이 많았던 것 같다. 대학 때 아빠가 내게 자동차도 사줬으니깐. 내 동기가 나에게 “네가 여자들한테 쓴 돈 합치면 제네시스 한 대 뽑았을 거야” 라고 했다.
내 장점이었던 돈과 외모는 내 노력으로 향상될 수 없었다. 대학 때 나는 직접 돈을 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주는 용돈에 의지했다. 엄마가 용돈을 많이 주면 그날은 여자들에게 더 사랑받는 거고,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게 된다.
외모에 있어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여자들에게 추리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절대 이틀 연속으로 같은 옷을 입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내 외모가 내 노력으로 (근본적 차원에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잔뜩 꾸미고 나가도 이상하게 여자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마음이 아팠고, 내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내 정체성이 없었다. 나는 허수아비 혹은 아바타처럼 살았던 것 같다.
심리학자 미하이칙센트 미하이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쾌락에 집착한다’고 하였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무기력한 환경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들에 의지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술이나 게임, 도박에 탐닉하지만 나는 오로지 여자, 여자였다. 건설적인 행동 하나 없이 오로지 여친의 사랑만을 갈구했던 것 같다. (넓은 의미에서 사랑도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공부라도 열심히 했더라면 여자들에게 집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땐 왜 그리 내 미래가 잿빛이었을까? 공황장애가 항상 따라다녀 건강한 장래를 기대하지 않아서였을까? 대학 4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공무원 공부도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시험을 합격해야지 여자친구가 나를 더 사랑할 거라서 공부를 했던 부분이 크다. 그렇게 몇 년을 억지로 꾸역꾸역 했던 것 같다. 일년이 지날수록 내 우울은 2배씩 늘어났다. 내 인생의 중심에는 그녀들만 있었지, 나는 없었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시간은 어쨌든 흘러갔다. 나는 지금 도서관에 와 있다. 몹시 추리하다. 맨날 입는 검은 패딩에 검은 모자 푹 눌러쓰고 열람실에서 글 쓰고 있다. 옷을 안 산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30대 이후부터는 외모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주말에만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에 자유를 누리니깐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 이건 내 선택이고, 엄마도 이젠 그냥 포기상태다.
그래도 좋다. 나는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 글을 쓸 때는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책 출판을 위해서 글을 쓰고, 앞으로 진행할 팟캐스트를 구상하고 있다. 내 비록 거지 같은 꼴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까지 초라하진 않다. 예전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내가 탔던 차가, 지갑에 있는 돈이 내 위신을 세워주었지만 이젠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노트에 볼펜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돈이나 외모가 아니었다. 내 능력으로, 내가 직접 노력하거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내가 오늘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많은 이웃들이 다녀가고 누군가는 공감을 눌러줄 것이다. 나는 내 글에 확실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내 시간과 비례해서 내가 성장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불안도 없다.
어느 순간 나는 삶의 중심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정체성이 다 있다. 그것을 찾게 되었을 때 불안이나 우울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예전에는 여자 혹은 공무원 시험이 내 인생의 제일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착은 삶의 의미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할 때나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정체성을 찾았음으로 집착도, 공황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