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때문에 좋은 점도 있었다. 공황이 오면 ‘아 이제 죽는구나!’ 했었는데 10~20분 지나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내가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어떤 스릴감, 쾌감 같은 것들이 내 몸을 스쳤는데, 아마 이건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을 때 드는 느낌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잠깐씩이었지만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 느낌도 공황과 마찬가지로 처음 겪는 것이었다. 나는 이 느낌을 그냥 ‘좋은 느낌’ 또는 ‘필링(feeling)’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때 나는 극과 극은 서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그 강렬했던 죽음의 기억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게 삶의 소중함를 깨우쳐주었다. 공황이 쓰나미처럼 지나간 자리엔 새로운 꽃이 피어났다. 늘 곁에 있기에 평범한 눈으로 바라봤던 일상들이 아주 천천히 선명하고 특별하게 내 모든 감각을 파고 들었다. 물기 어린 시멘트 바닥, 길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 아침 햇살, 시원한 공기, 잔잔한 음악 소리, 쌩쌩 부는 바람까지 그 모든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공황이 오기 전까지 몰랐다. 실제로 나는 공황이 오고 난 후, 현재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는 곳에 필링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공황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부럽기도 했지만, 공황 뒤에 오는 이 환상적인 느낌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 느낌은 공황이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명상을 깊게 하면 이렇게 좋은 느낌을 경험한다고 들은 것 같다.
내가 필링을 경험하고 보니깐 삶의 해답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이 필링에 다 있는 것 같았다. 필링은 나를 평화롭게 했고 날 협박했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필링은 내 눈 앞에 어떤 의무도 무력화 시켰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도 (일시적으로는) 깨끗하게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