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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ug 16. 2017

명상과 메모의 힘

나는 조선소를 그만두고 맥도날드에서 오토바이로 햄버거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심한 공황이 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너무 바빠서 오후 3시부터 밤 10시가 넘도록 저녁도 먹지 못하고 계속 배달을 하게 되었다. 7시간 이상 허기진 배로 주택가, 아파트를 뛰어다니다 보니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그때 공황이 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배달 가방을 땅에 다 내려놓고 깊은 호흡에 집중하며 가로수 달빛 전등 사이로 천천히 10분 정도 걸었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 그의 익숙한 음성을 듣고 나서야 안정을 찾고 다시 배달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때 왜 공황이 온 것일까? 그것은 우선 내가 배가 고픈 상태에서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 어지러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상태에서 약간의 어지럼증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밥 안 먹고 오래 뛰어다니면 어지러울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그 가벼운 증상을 확대 해석하여 공황을 느낀 것이었다. 이상심리학에서 ‘공황은 어떤 신체감각(ex, 가벼운 어지럼증, 심장 두근거림 등)을 죽거나, 미치거나, 자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신호로 내 몸이 잘못 인식했을 때 일어난다’고 하였다. 분명히 나는 가벼운 신체증상으로 내가 죽거나 자제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머리(이성)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내 마음은 그 어지럼증을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일까? 어떻게 하면 내가 하는 말을 내 마음이 알아줄까?     


이런 고민 중에 발견한 것이 바로 ‘명상’이었다. 예전에 명상에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세뇌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암시를 하는 주체는 내 ‘이성’ 일 것이다. 책에서는 시끌벅적한 환경에서는 내 마음이 주위의 말을 듣지 않지만, 뇌에서 알파파가 퍼지고 평화가 나를 지배하고 나면 좌뇌(비판적 사고 담당)의 활동이 둔해져 내 마음은 타인 또는 내 이성(理性)의 어떤 메시지라도 수용할 준비가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공황이 있던 날, 내가 집에 가서 명상을 하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 후에 나 스스로에게 “가벼운 어지럼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아!” 라고 나에게 최면 걸 듯 속삭인다면 그 이후부터 같은 증상이 일어나더라도 내 마음이 그 메시지를 인식하여 공황이 오지 않게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날 나는 명상을 한 후에, 메모지를 꺼내 들고 “가벼운 어지럼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아!” 라고 기록을 하였다. 그리고 2주 후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마찬가지로 맥도날드는 매우 바빴고 오랜 시간 밥을 못 먹고 배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예전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2주 전에 적었던 메모 내용을 무의식이 그대로 인식하였는지 또 어지럼증이 있었음에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고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내(이성)가 나 스스로에게 세뇌하기가 성공했던 것이다. 너무 신기했다. 이것이 바로 명상과 메모의 힘인가? 생각했다.     


어떤 경우는 안 좋은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반박만으로 우리가 불안을 피해갈 경우도 있다. 이성의 힘이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논리적인 생각과 상관없이 불안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것은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몸을 이완시키는 명상을 한다든가 기분이 좋아지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한 후에 다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의 논리가 동물에게 훨씬 힘 있게 작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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