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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ug 16. 2017

감사일기 쓰기

tv에 ‘이지선’이라는 분이 나왔다. 그녀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얼굴을 비롯해 상반신 전체에 화상을 입고 수십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거쳐 지금까지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가 얼마나 심한 물리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지 잠깐 상상해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녀는 아직도 몸 곳곳에 화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스튜디오에서 시종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어떻게 그 생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힘든 치료가 이어지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손가락까지 절단해야 하는 수술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그녀가 그녀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래도 손가락을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그때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도 ‘어 이건 누가 한 말이지?’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짧아진 손가락으로도 단추를 잠글 수 있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멀쩡한 다리로 계단을 오를 수 있고 소중한 가족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이런 자세로 자기 자신에게 세뇌를 하면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항상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화상과 같은 절망 속에서도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습관만 가진다면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란 사실이었다.     


나는 그 방송을 보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 동안 나는 삶에 감사해야 한다고 수없이 생각했고 글로써 그것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감사일기’를 쓰는 실천에는 인색했던 것이다. 내겐 아직 추상적인 이념이라 방관했던 것이 어떤 이에겐 가장 절실했던 실존이며 삶의 구체적 방침이었는데도 말이다.     


예전에 한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이런 말을 하였다. “야 너 진짜 부럽다. 넌 결혼도 일찍 하고 지금 나이에 대기업 과장이라니.. 이제 앞날이 창창하겠구나!” 그러자 그 친구는 “난 네가 진심으로 더 부럽다. 난 가족들 때문에 회사 생활 스트레스 받아도 억지로 하지만 넌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잖아!” 라고 하였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 때 어느 심리학 교수님께서 “이 세상에 모든 것엔 양지와 음지가 공존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디를 바라보느냐이다.” 라고 한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음지’만을 바라보면서 삶을 낭비하고, 지금 아니면 느끼지 못할 소중한 것들(양지)을 다 놓치면서 사는 건 아닐까?     


상황이 아무리 안 좋아도 우리는 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다. 상황이 좋고 안 좋고는 쉽게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최초의 긍정은 우리의 ‘이성’에서 나온다. 지금 내 모든 감정이 아무리 우울하고 불안해도 최소한의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이성은 지금 상황이 최악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성이 가지고 있는 바람직한 생각을 글로 적는 순간, 그것은 큰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성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그 이성으로 우리 자신(감정)을 세뇌할 수 있다. 우리는 이성과 감정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내 몸의 1m 밖에 이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나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나의 본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우리를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기에, 우리 본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생각보다 멋있고 긍정적이고 매력적이다. 바로 이런 사실을 우리자신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감사일기를 쓸 때 ‘내 주변의 소중한 가족, 친구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나는 정말로 1m 밖에서 자아의 입장이 되어 나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듯 말한다. 그리고 그 분리된 존재를 느껴본다. 내 안의 분리된, 나 자신을 보호하고 챙겨주는 ‘이성’의 존재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이성’의 입장이 되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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