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사회복지사 면접

by 참새

공무원 시험 포기 후 삶이 끝없이 무기력해졌다. 뭐라도 해야 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사회복지기관에 이력서를 넣었다. 집이랑 가깝고 월급도 괜찮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아무 곳이나 좋으니, 그곳에 누구라도 사람만 있으면 상관없었다. 나 혼자만 아니면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얼마 후 그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서류심사 할 때 이력서, 등본, 자격증 등 여러 가지 서류를 첨부했다. 그때 프로포절(시,도에 제출하는 프로그램 제안서)을 가져오라고했다. 새로 프로포절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 간단한 서류조차 작성할 의욕이 없던 때였다. 대학 때 과제로 억지로 했던 프로포절을 가져갔다.


면접 당일 날 합격하길 기원하며 정장을 입었다. 시간에 맞춰 면접장에 도착했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누군가 왔다. 북한의 독재자를 닮은 얼굴에 머리카락이 희끗한 중년 아저씨였다. 우락부락한 그는 내 이력서를 보더니 반말로 말했다.


“나이가 많네”

“아.. 네 졸업하고 이것 저것 하다가 왔습니다.”

프로포절을 훑어본 다음 그는 말했다.

“근데 프로포절이 왜 이 모양이야! 성의도 없고, 현실성도 없잖아?”

“죄송합니다, 제가 예전에 적었던 걸 그대로 가져와서요..”

한참을 프로포절에 대해서 질책하더니 갑자기

“여자친구 있나?”

사적인 질문에 당황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따질 경황이 없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얼마 전에 헤어졌습니다.”

“보나마나 차였겠지. 왜 차였는지 알 것 같다. 쯧쯧. 남자가 이렇게 패기가 없어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노? 나는 너 같은 사람이 제일 싫다”


ㄴ.png 황드롱 그림


한동안 그의 쩌렁쩌렁한 잔소리가 이어졌다. 내게 정신차리란 것이었다. 그때 자리를 박차고 그곳을 나갔어야 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뽑으면 그만이지,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왜 내게 막말을 하는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바보처럼 듣고만 있었다. 내 마음은 왜 그리 여렸을까. 그때는 정신이 혼미했다. 그곳을 나오니 그제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가 내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는 서류 몇 장으로 내 인생을 통째로 깔아뭉개었다. 지금도 얌전히 그 자리를 나왔다는 것이 후회로 남는다. 세상에 이런 미친xx가 있다는 걸 알았다. 면접생에게 프로포절 달라고 한 것도 뻔한 계산이다. 자기 기관 프로그램이 고갈되어서 남의 아이디어나 훔치려고 한 개수작이 틀림없다.


이런 말을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이런 썩은 데선 일 시켜줘도 안합니다. 당신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불쌍하네요. 남의 인생 걱정 말고 당신이나 잘 사세요.’


어떻게 이런 괴물이 세상에 존재할까? 이런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의 성장이나 좋은 미래에서 찾지 않는다. 그에겐 가능성이 없다. 그저 자신이 ‘누구보다는 낫다’라는 그 사실하나로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 남들을 자근자근 씹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보다 한창 어린 힘 없는 면접생을 앞에 두고, 자기 권력 이용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심리학 수업 때 ‘전치(displacement)’를 배운 적이 있다. 전치는 원래의 대상에게 주어야할 감정을 덜 위험한 대상에게로 옮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사에게 혼나서 화난 감정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마누라에게 면박을 받거나, 자식들에게 무시당한 것을 나에게 푼 것일 수도 있다. 그를 됨됨이를 볼 때 충분히 그럴만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에게 화나던 마음이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그래, 그도 불쌍한 사람이다. 불쌍한 것. 자기도 인생이 얼마나 안 풀렸으면 저렇게 까지 지랄을 할까. 누가 봐도 지랄이었다. 그 일을 잊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며칠 후, 노인복지관에 이력서를 넣었다. 사회복지사를 딱 한 명 뽑는다고 했다. 월급도, 근무 시간도 괜찮은 곳이었다. 내 학점이 2점대라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꼭 합격하고 싶었다. 이력서를 다시 정성껏 적었다. 외모를 단정히 하고, 증명사진도 새로 찍었다.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기뻤다.


도착한 복지관에선 7명의 면접생이 있었다. 사람 한 명 뽑는데 7명이나 면접을 본단 말인가. 면접생들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 같이 대기하고 있었다. 복지관 직원은 우리들에게 종이컵 커피를 주면서 마냥 기다리라고 했다. 나이가 나보다 한창 어려보이는 청년, 아가씨, 그리고 아줌마들도 있었다. 우리는 30cm간격으로 붙어 있었으면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합격하면 그들은 떨어질 것이다. 나 아니면 너, 혹은 그 옆의 사람이 합격하면 제로섬 게임은 끝난다. 경쟁자들은 서로를 곁눈질 했다. 나의 소망만큼 그들도 간절했을 것이다.



참을 수 없이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면접관들은 옆의 사무실에서 두 명씩 호출하였다. 세 명의 멀쑥한 노신사들이 점잖게 앉아 있었다. 나와 같이 면접을 본 사람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예뻤다. 순간, 내가 그들이라도 이 여성을 뽑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뭘 잘하는지 물었다. 내 이력서를 확인하지 않았던 티가 났다. 나는 엑셀도 잘하고, 글쓰기도 잘한다고 하였다. 내겐 그 질문이 끝이었다. 그 여성에게 질문이 쏠렸다. 그녀는 많은 자격증으로 자신을 설명했다. 말도 어찌나 조리 있게 잘하든지. 결국 허무하게 면접이 끝난다.


나는 면접 결과를 예상했다. 최소한 나는 합격이 아니었다. 화가 났다. 기억나는 모든 순간들이 잔인했다. 나는 등본 떼려고 동사무소도 갔고, 증명사진 찍으러 사진관에도 갔다. 자격증 출력하고, 졸업증명서 출력하는데 돈은 왜 그리 비싼가. 백수라 돈도 없는데. 서류상의 내가 맘에 안 들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지 말든가. 아침부터 사람 오라 가라 하고. 그날 하루 기분 망치고, 할 일도 못했다. 이것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복지관에서는 내 등본이랑 이력서는 돌려주지도 않았다. 다음 면접 볼 때 또 내 시간 들여 동사무소가고, 내 돈 들여 서류를 출력해야 했다.


이 사실 하나에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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