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년전 이야기네요ㅠ)
나보다 엑셀 잘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엑셀은 컴활 자격증 때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삶의 매 순간을 엑셀과 함께 해야 한다. ctrl과 shift키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한 후, 엑셀은 내 삶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 지금도 숫자, 텍스트, 삶의 모든 데이터를 엑셀로 관리하고 있다. 심지어 책도 엑셀로 썼다.
복지넷을 보다가 엑셀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란 곳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공고는 사라지지 않았다. 월급이 적었다. 사회복지사를 우대하긴 했지만 자격증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면접은 순조로웠다. 엑셀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했다. 사무자동화산업기사 자격증도 있었다. 면접관은 휄체어를 탄 장애인이었다. 표정이 인자했다. 그는 이미 내가 일 할 거라 가정하고 말하는 듯 했다.
내겐 그따위는 아무 상관없었다. 돈도 필요 없었다. 직업을 통한 심리적 치료가 필요했었다. 3일 뒤,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나도 직장인이 되는구나. 직원이 전화가 와서 수습기간 2개월 동안 월급이 90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첫 출근을 했다. 사무실 자동문이 열리자 밝게 켜진 형광등 빛사이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많은 장애인들을 한 번에 본적은 없었다. 지적장애인들도 많았다. 비장애인들도 섞여 있어 사람들로 붐볐다. 활기찼다. 이전까지 날 사로잡던 적막함과 대조적이었다. 테이블 위 여기 단체 소식지가 시야를 스쳤다. '저상버스 보급 확대', '교통약자 콜택시 증진', '장애인 활동보조 시간축소 반대' 등등 무슨 말이지 모르는 기사 타이틀이 보였다.
우리나라에 장애 인구는 전체의 10%가 넘는다. 하지만 내 가족, 친구, 동료, 그 어디에도 장애인은 없었다. 나는 장애인을 모르고 장애를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많은 장애인들은 시설에 있거나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단체의 가장 큰 목표는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였다. 시설이라는 곳은 '도가니' 영화에서 나온 그런 곳이다. 장애인이 좁은 데 갇혀 살다보니 착취, 폭행, 성폭행을 많이 당했다. 우리 단체는 장애인들이 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사람들과 어울려 cgv가서 영화도 보고 아웃백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약자를 돕는 일은 보람있고 좋은 일이다.
사무실 직원은 9명이었다. 그 중 6명이 장애인이었다. 2명은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었다. 많은 직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대표님과 소장님을 빼면 직원들 나이대도 다 비슷했다. 6월이라 밖은 더웠지만 사무실 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했다. 마우스 클릭 소리, 키보드 자판 누르는 소리가 경쾌했다. 주 5일 근무에 저녁 7시에 퇴근했다. 내 깨끗한 책상, 새 사람, 새 패턴이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나의 첫 일은 직원들 월급 송금, 4대 보험, 각종 세금, 관리비, 유지보수비 등 단체의 모든 회계업무였다. 전에 있던 직원이 하루 걸려서 했던 일을 2시간만에 해치웠다. 엑셀은 아무리 해도 지겹지 않았다. 나는 머리 쓰는 일이 몸 쓰는 일보다 좋았다. 커피 한잔 하며 모니터를 째려보는 동안엔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소장이나 대표님이 계시지 않을 땐(무두절) 최신 유행하는 음악을 스피커로 들었다. 직원들은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했다. 밥 때가 되면 뭐 먹을지 고민하였다.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정부의 보조금을 얻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예산안을 새로 짰다. 그것은 창의적인 활동이었다. 내가 공익할 때 봤던, 공무원들의 지루한 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류로만 우리를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들은 필드의 치열함을 모른다. 그래서 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였다. 사업이 하나 통과 될 때마다 일은 늘어나고 직원들은 증원되었다. 다른 직원들은 이 일이 빡세다고 하였지만, 나는 좋았다. 뇌의 주름이 생기는 건 환영이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알았다. 20대 때 싸이월드에 매일 조각글을 갈겼던 것이 도움이 된 모양이다. 각종 서류를 창작? 하는 동안 나의 소설은 빛을 발했다. 위에서는 나의 서류 작성 실력을 인정했다. 우리 단체에서 수습을 떼고 정규직이 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것은 장애인 관련 책을 읽고 A4 3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는 것이었다. 내겐 너무 쉬운 일이었다. 대표님이 처음 내 독후감을 보시곤 했던 말이 생각났다.
대표님은 mbc 방송작가를 하시던 분이셨다. 칭찬에 인색한 대표님께서 내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셨다. 우리 협의체는 다른 도시에 있는 직원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 그 사람들 중에 내가 독후감을 제일 잘 썼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하늘을 날았다. 다른 직원들의 시기, 질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선마저 내겐 즐거웠다. 나는 이 단체에 가장 빠르게 적응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