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종현. 대체 그는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다. 나는 잠 안 오는 밤마다 푸른밤 라디오을 들었었다.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슬펐다기보다 무서웠다. 그와 관련된 기사나 방송 어떤 것도 보지 않았다. 베르테르 효과처럼 나도 전염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당시 나도 힘들었다. 나도 내 한 치 앞을 몰랐다. 그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노래를 들었다. 눈물이 났다. 그를 애도하는 나를 보며 내 마음이 나았다고 확신했다. 다시 그의 죽음의 이유를 생각했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신인에서 성공에 이르는, 이제 막 빛이 나려하는 순간에는 자살하지 않는다. 그도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방방곡곡 공연 다닐 때는 부정적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상에 오르고 삶의 방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아이돌로서 정상 이후의 삶을 살아야했다. 연기, 예능, 창작, 아니면 사업이라도, 그 어떤 것이라도 목표가 있어야 했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무가치하다고 느꼈던 걸까? 아님 유치했던 걸까?
그 일이 있고, 맥도날드 알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울적해졌다. 별의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그날은 꽤 심각했다. 어느 순간 내가 계속 부정적 생각만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삶을 파멸로 이끄는 부정적 감정의 힘은 강하다. 악마적 유혹이 있다. 그날 집에 와서도 그 기분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퇴근하고 저녁에 와서 내가 한 일은 강의 계획서를 짜고 그것을 문화센터에 보내는 일이었다. 내 기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컴퓨터 화면에 고정시키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기만 했다. 그날 오후 내게 있었던 일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듯이.
친구가 내게 서운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 친구와 멀어지기 싫었다. 그래서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친구는 자기가 내게 서운한 말을 한 것을 기억이나 할까?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기억은 지나칠 정도로 왜곡되기 싶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마음 상할 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친구와 나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우리가 모른 척 넘어가면 진짜 그 일이 없어질 수도 있다. 특히 감정적인 트라우마가 그렇다. 최근 유행하는 정신역동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트라우마를 다루지 않는다. 네가 기억하는 그 일은 왜곡된 기억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저 ‘내일, 일주일 안에 무슨 일을 할 건지’에 질문을 집중한다.
감정은 그때는 심각하지만 그것자체로 힘이 없다. 연인끼리 감정적인 문제로 싸워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너 나 안 좋아해? 너 마음이 변했지? 네 마음이 지금 어때? 왜 사랑이 변해? 이런 감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내 감정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감정을 지나치게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감정은 밥 먹을 때, 스킨십 할 때, 시험 합격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과정에 있다. 감정이 우선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연인들도 감정에 대해서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에 만날 때 생긋 웃으며 우리 뭐하고 놀지에 대해 이야기 하면 된다. ‘재밌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볼까? 우리 같이 여행갈까? 같이 운동 배워볼까? 날씨 좋은데 손잡고 데이트나 할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감정은 이런 데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은 화(anger)가 났을 때는 그것을 그저 관찰하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모른 척’ 하라는 것이었다. 감정은 그 자체로 힘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으로 이야기하고, 문제 삼을 때에만 감정적인 것이 문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영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이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이 부정적 생각을 낳는다.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92년도 프로야구 시즌에 롯데자이언츠가 우승을 했다. 그때 부산 사람들은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93년에는 미국 NBA 시카고불스가 우승했다. 그때 시카고 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동원이나 마이클조던이 나에게 돈 보태준 것도 아닌데. 사람에 따라서 어쩌면 그런 일들은 유치한 이벤트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 스포츠를 좋아하고, 자기 지역 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내 외부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감정을 치유하는데 온 정신을 쏟는다. ‘오늘 하루는 기분이 어땠어, 그래 좋았다 나빴다 했지. 그래선 안 되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해.’ 이런 생각만 한다.
나는 요즘 농구를 다시 본다. 창원 LG를 응원한다. 이번 시즌 망했다. 어쨌든 농구장에 다시 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성의를 다해 창원을 응원했다. 그러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경기 끝나고 만남의 광장에서 사람들과 4대 4농구를 할 때 그 순간에만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이런 경쟁을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동물적 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남보다 우월하기를 원하고, 더 성공하기를 원하고, 매력 있는 이성을 차지하기를 원한다. 감정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은 이런 세속적인 것들이 무가치하거나,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감정은 이런 유치한 것들에서 나온다. 그러니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이런 유치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런 행동들로 우리를 자극해야 한다. 초딩 운동회에서 청군, 백군 응원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