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새 Jun 24. 2015

내 잘못이 아니야

2012년, 공무원 시험날 아침, 시험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비장함과 긴장감이 감돌아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번 시험은 꼭 합격해야 한다. 작년엔 평균 합격선을 넘었음에도 희망 근무지를 끝까지 창원으로 고집하여 떨어진 것이다. 경남 함안, 산청군 같은 데 원서를 넣었으면 합격했을 점수였으니깐.’ 적어도 당시 내 관념엔 다른 변수는 없었다.


2011년의 그 안타까운 패배가 서러워 무려 1년을 독서실 모서리에 박혀 조명을 낮추고 커튼을 둘러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해 푸른 바다를 상상하였다. 바다를 상상하지 않으면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았기에. ‘그래 남해로 가자! 꼭 치열한 창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남해 탁 트인 풍경에 파도 소리 들으며, 동사무소 5시 칼 퇴근하고 해안선을 따라 운치 있게 걸어보자! 거기서 아리땁고 아담한 낭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귀여운 아기도 낳자!’ 이렇게 화사한 꿈들이 내 추레하고 도저히 참기 힘든 공시생 생활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게 해준 동력이었다. 그렇게 ‘남해군’으로 지원했고 역시 경쟁률은 낮았다. 그 해는 인원도 평년보다 많이 뽑았다. 나도, 주위 모든 사람들도 내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다.


시험장에 들어선 나는 그 동안 누적된 꿈의 무게에 살짝 짓눌렸던 것일까? 어깨를 활짝 펴기가 여의치 않았고 긴장감이 뼈 속까지 침투해 깊은 호흡이 잘 되질 않았다. ‘아. 청심환을 먹는다는 걸 깜빡 했구나!’ 시험은 어느 순간 시작되었고 답지를 마킹하는 손에는 눈으로도 인식될 만큼 심한 떨림이 있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좋다. 문제를 거의 다 풀어갔고 시간은 제법 남았으며 무엇보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은 약속처럼 흘러갈 것이고 나는 모두의 기대처럼 합격할 것이었다.


10분 남짓 남았을 때였다. 어랏, 마지막 과목 마킹을 하는데 순간 의식을 잃었던 것인지 두 줄을 건너뛰고 오답 2개를 이어서 적었다. ‘이거 어쩌지? 오답 1개면 무시하고 넘기겠는데 2문제는 많이 아까운데?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다시 처음부터 마킹 할까?’그때 나는 ‘이 답지는 놔 두고 새 답지를 받아 시간 안에 못하면 기존의 답지를 제출하면 되겠구나’ 단순히 생각하고 감독관에게 새 답지를 달라고 하였다. 그 감독관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새 답지를 건네주며 동시에 원래 내 답지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 항의할 틈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새 답지를 빨리 채워나가야만 했다.


마지막 과목이 남았을 때 2분이 남았다. 아 충분하다! 한 숨 돌리고 다시 써내려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종이 쳤다. 아 뭐지? 그제서야 감독관이 처음 교실에 와서 “앞의 시계가 1~2분 느립니다. 참고하세요” 했던 말이 스쳤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감독관이 “답지에서 손 떼세요!” 할 때도 나는 열심히 답을 적었다. 이제 5문제 남았다. 그런데 내 자리는 답지를 제일 먼저 걷는 가장자리 뒤에서 2번째였다. 감독관이 빛과 같은 속도로 내 자리로 와서 “셋 셀 동안 답지를 주지 않으면 무효 처리됩니다. 하나, 둘, 셋” 과 동시에 답지를 완성했고 그 감독관은 나를 지나쳤다.


“이 답지 받아주세요!” “안 됩니다”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아까 나한테 룰 설명도 없이 답지 찢었잖아요? 그리고 시계가 이상하면 시험 끝나기 전에 한번 더 학생들에게 상기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시험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오만 진상을 다 떨며 매달려 보았다. 다 소용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 진상을 충분히 봐 버렸다. 끝났다. 집에 오는 길에 힘들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지금은 얼떨떨해서 아무 느낌이 없는데 내일부터, 모레부터 찾아올 후 폭풍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아픔을 겪어본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 교실 시계는 2분 느리게 맞춰져 있었을까? 왜 나는 제일 가장자리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을까? 감독관은 왜 새 답지를 주면서 “시계가 2분 느린 거 아시죠? 기존의 답지는 파기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이런 작은 언질조차 없었을까? 어떻게 1줄도 아닌 2줄이나 건너뛰고 답을 이어갔을까? 나는 태어나서 무슨 시험을 치더라도 답지 한번 바꿔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하필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에서 이런 일을 겪었을까?


그 날의 상황들이 진심으로 신기해서였을까? 억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운명’ 정도는 있어줘야 이 상황이 설명될 것 같았다. 이렇게 모든 요소가 딱딱 어긋나게 들어맞기도 힘든 것 아닌가? 이런 괴기스러움이 오히려 더 날 위로했다면 억지일까? 신(神)의 꼬리가 길어서 밟힌 걸까? 이런 온갖 상념들은 나에게 강력한 한 가지 영감을 주었다. 그것의 세기는 다가올 후 폭풍보다 더 커서 내 마음 속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만이 일었다.


.

.

그 영감은 바로 “내 잘못이 아니야” 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