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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15. 2015

바닥을 기어본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요즘 맥도날드에서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것으로 내 부족한 용돈을 채울 수 있고 남는 시간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나는 라이더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엔 배달이 없다는 이유로 2층에 있는 냉동실에서 박스로 포장된 음식 재료를 1층 주방으로 내리는 일부터 시작해서 바닥 청소, 설거지 등 다양한 일을 한다.


이틀 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축축함을 안고 배달을 나서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이 이어령의 ‘생명이 자본이다’였다) ‘지금 내가 하는 이 고생을 이어령과 같은 인문학 책 속의 고상한 지식인들이 알긴 하는 걸까? 비 오는 날 스쿠터에 몸을 의지해 40도 내리막길에서 급 커브를 꺾어야 하는 이 아찔한 핸들을 그네들이 한번이라도 잡아 본 적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며 현재까지도 대학 강단에서 교수직으로 일하고 있는 그들은 비 정규직의 설움과 시급 5,300원의 최저임금과 싸움하는 아르바이트 근무자들의 고단함을 경험해 보았을까? 3년 넘게 공부해서도 공무원 시험 다 떨어지고, 나이 먹고서도 능력 없어 여자친구까지 떠나 보내야 했던 그 비루한 눈물을 그 박사라는 사람들은 한 방울 흘려본 적이 있을까? 그 어느 것 하나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는데 그것은 어떤 세상일까?


내 생각엔 바닥을 직접 기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자꾸 그들은 형이상학적으로, 감정적으로, 비현실적으로만 세상을 어렵고 힘들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들의 타자에 대한 동정도 위선이며, 그들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은 힘 없는 논리에 기반한 명제들뿐인 것 같다.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상위의 잘난 엘리트들이 내뱉는 사설이 아니라, 가장 썩어 문드러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겨우 토해내는 민초들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걸?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내음이 어떤지는 모를걸? 한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깐. 또 여자에 관해 물으면 네 타입의 여자들에 관해 장황하게 늘어놓겠지. 벌써 여자와 여러 번 잤을 수도 있고. 하지만 넌 여자 옆에서 눈 뜨며 느끼는 행복이 뭔지 모를걸? 전쟁에 관해 묻는다면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넌 상상도 못해. 전우가 도움의 눈빛으로 널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게 어떤 건지.

넌 사랑에 관해 물으면 한 수 시까지 읊을 수 있겠지만 한 여인에게 완전한 포고가 되어 본 적은 없을걸? 누굴 그렇게 사랑한 적 없을 테니깐. 내 눈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 있게 보이기보다 오만에 가득한 겁쟁이 어린애로만 보여! 그런데 넌 그림 한 장을 달랑 보곤 내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내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 했어’

영화 ‘굿 윌 헌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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