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를 하다 쉬는 시간이 지났다.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가야했다. 출차가 많이 밀려있어 딱 차 한 대만 더 빼주고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 그래야 뒷 근무자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차키를 받았다. 벤츠키였다. 피곤한 상태에서 차에 탔다. 차에는 벤츠로고가 아닌, m자가 겹쳐져 있는 듯한 다른 로고가 있었다. 차 문 밑에는 maybach라고 적혀있었다.
차는 주차기둥 왼쪽에 바짝 붙어져 주차 돼 있었다. 별 생각없이 차를 어느 정도 앞으로 빼고 왼쪽으로 핸들을 틀면서 액셀레이트를 밟았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짧은 순간에 수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 젠장, 이럴 수가.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갈걸. 간이 철렁했다. 그 상태 그대로 차에서 내려 상태를 확인했다. 차 왼쪽 뒷바퀴쪽이 주차기둥과 부딪혔다. 차에 30cm정도의 큰 기스가 나고, 차체가 안으로 살짝 들어갔다. 딱 보기에도 비싼차 같았다. 망했다.
미래 주임이 그 장면을 봤다. 곧이어 소장님이 왔다. 아 원식씨~ 하며 한숨섞인 소리가 들렸다. 그 장면을 한참을 보면서도 내 실수라기보다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 사고가 날리 없는데? 나는 평소에 운전을 잘한다고 자부했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경차를 너무 오래 타서 리무진같이 긴 차에 대한 감이 없었던 것일까? 미래주임이 차를 보더니 표정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헐, 이 차 벤츠 마이바흐네요. 벤츠 중에서 젤 비싼건데ㅠ”
알고 보니 그 차는 2억 5천만원짜리였다. 아씨. 하필이면. 예전에 내가 타던 중고 비스토 50대 값어치였다. 이제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소장님은 차 주인이 1층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일단 올라가서 차주에게 사과부터 하자고 했다. 세미정장을 입은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장님이 “ 저 고객님 죄송한데요, 고객님 차가 올라오다가 사고가 접촉사고가 나서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 주인은 짜증나면서 말했다.
“아~씨, 그래서 차는 어딨는데?”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벤츠회사를 통해서 빠른 시일 안에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내일 당장 멀리 가야하는데.. 아, 귀찮은데.. 똑같은 차로 렌트 가능하나?”
“저희가 최대한 맞혀드리겠습니다”
소장님은 내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로 낮은 자세로 말했다.
그 고객은 진상은 아니었다. 그는 소장님 명함을 받고 연락달라면서 순순히 물러났다. 자기 차가 긁혀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렌트받고 차 고치는 하는 것이 진심으로 귀찮은 듯 보였다.
그 고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 잘못도 없는 미래주임과 소장님도 옆에서 고개을 연신 숙이며 사과를 했다. 어쨌든 일은 잘 해결되었다고 한다. 다른 고객은 우리에게 차를 맡기지 않고, 직접 차를 고치겠다고 우기고 더 비싼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내 잘못에 대해 시말서를 적어야 했다.
여기서 10년을 일해오던 소철이도 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것도 한 달에 두 번이나. 이곳은 사고가 났을 때 보험처리가 된다. 하지만 운전자에게도 자비부담도 있다고 하였다. 사고비용에 따라 한 건에 50만원까지 비용을 물린단다. 소철이는 불행하게도 그 달에만 사고 두 건으로 100만원을 뱉어냈다고 했다. 월급받고 핸드폰 요금 주니 남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일주일 후에 재입사하였다. 어쨌든 50만원이 내가 부담하는 최대치이다. 다행인것일까? 물론 실제로 외제차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은 몇 백일수도 있다. 하지만 50만원도 내갠 정말 큰 돈이었다.
다음 날 나에게 운전을 시키지 않았다. 고객들 짐 실어주는 등 잡일만 했다. 관리자들에게 내가 낼 돈이 얼마냐고 물어보자 견적이 나와야 하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래, 어쨌든 최대가 50만원이다. 운전하기가 싫어졌다. 아니, 운전대 잡는 것이 무서웠다. 이것도 트라우마이다. 사고날 당시만 해도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내 잘못이란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억울했다. 나는 여기에 돈이 없어서 돈 벌러 왔다. 하루에 100대 가까운 차를 피곤한 상태로 운전하는데 사고가 한번도 안 나는 것도 이상한 것 아닌가? 아침부터 밤까지 개고생하는데, 사고 비용이 얼마 나올지 초조해하면서 월급도 제대로 못받는 꼴이라니..
며칠 뒤 관리자가 내게 와서 사고비용이 20만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 기뻤을까.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