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새 Aug 11. 2015

아이러니

우린 한참을 말 없이 걸었다. 어쩐 일인지 지금은 나란히 걷는다. 아니 오히려 내가 조금 더 빨랐다. 그녀가 커피숍을 가리킨다. 순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안이 엄습했다. 우리는 정확히 57일 전에 만났다. 학교 과방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는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밥을 먹었다. 집에 도착하니 낯선 번호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안녕 나 ㅇㅇ인데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그녀는 중학생 같은 단발에 앳되고 하얀 피부를 가졌다. 그녀는 환한 빛과 함께 날 찾아왔고 난 강하게 몰아치는 그 무엇도 거부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수업을 마치고 혼자 학교를 거닐었다. 그녀가 저 멀리서부터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넌 어디가?” “그냥 너 따라서..” 날 하염없이 따라오다 내가 멈추면 따라 멈추고 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얼른 시선을 향했다. 점점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학교 앞 한 무리의 선배들이 우리를 지나친다. “어 너네 둘 다정하게 어디 가? 너네 무슨 사이야?” “네?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내 말을 끊고 그녀가 불쑥 “저 지금 원식이에게 작업 들어가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는 정확히 같은 속도로 캠퍼스를 거닐었고 손을 잡았다. 그녀가 내 옆에 항상 있는 것이 기적이라 여겼다. 그저 그녀를 마음 놓고 온전히 좋아하고 싶었다. 어떤 제한도 없었다. 좋아하고 싶을 만큼 좋아했다. 나의 모든 감각들이 깨어나 꽃을 피웠다. 세상이 그렇게 선명하고 느리게 흘렀던 적이 없었다. 지금 그녀가 커피를 시킨다. 그녀가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왜 아직도 알지 못했을까? 그녀가 말을 하지 않는다.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온 마음이 그녀를 향하는 데도 왜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아이러니하다.

 

언젠가부터 그녀와 걷다 보면 그저 걷기만 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 길의 끝에는 점 하나 없는 망망대해가 이어졌다. 그 곳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서로를 찾았으나 아득함만 가지고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죽을 만큼 무엇을 갈구했지만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그녀는 나를 지나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난 초조했다.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다른 연인과 달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내가 그저 서툴렀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너무 순진해서? 알고 봤더니 내가 시시해서?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이 운명은 잔인했다.

  

“너 지금 우나? 내 앞에서?”

“나 너무 힘들어”

“그래 알겠으니깐 울지 마라. 우리 그만하자”

“널 좋아해! 그리고 앞으로도 널 좋아 할거야”

“나도 안다. 그러니깐 그만 일어나자”

“우리 손잡자! 그리고 용지 못 걷자! 맛있는 것도 먹자”

“알았으니깐 이제 그만하자”

작가의 이전글 신에 대한 믿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