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세상은 운명론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인체의 신비 같은 것을 보면 이렇게 정밀하고 완벽하게 잘 만든 주체(조물주), 우리의 예상을 훨씬 초월한 능력을 지닌 어떤 존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의 가장 합리적인 사람들 조차도 신의 존재를 한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믿는 것과 그것에 대해 경외감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별개인 것 같다. 나는 실제로 신 앞에 죄의식 같은 것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합리주의가 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아서 그런 것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과 같은 개념도 우리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신의 존재는 믿지만 그 존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깊이 고려한 적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정말 그 존재에게 의지하고 두려울 정도의 경외감과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산다면 그것 자체로 나에게 경이로운 일이 될 것 같았다. 무미건조하지 않고 필링이 충만한 감동적인 삶 말이다. 어느 날, 난 그런 삶이 궁금해졌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존재에 대한 믿음을 넘어 초월적인 어떤 것과 신비로운 관계에 놓이고 싶었다. 그것은 사람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까? 기대하면서..
인간은 원래 나약한 것 같다. 나는 한 때, 그 누구에게도 의지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 만큼 강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춘기 때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는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인생무상이라고.. 세상에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까지나 귀여운 외모로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는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도 일어나며 건강이 나빠지기도 한다. 이것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결국 과거 나처럼 아무리 잘난 척하는 사람들도 변하는 세월 앞에서는 모두 나약해 질 수 밖에 없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삶을 너무 힘들게 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래 나약하며 세상은 내 의지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하지 않고 항상 온전한 존재에게 자세를 낮추고 기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신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과정 지향적인 삶을 살 게 될 것이다. 우리 손에 닿을 수 있는 부분은 ‘과정’이고 ‘결과’는 항상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그 모든 결과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저 우리 할 일만 하고 신의 뜻에 따라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심적 부담이 얼마나 가벼워 질까?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나 결과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불신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