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몇 년이나 나를 뒤흔들다 결국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사람이었다.
잊으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그녀의 전화 번호, 카톡, 문자, 관계된 지인들까지 모두 차단했다.
그녀를 잊기 위해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수신이 거부 돼 있었지만 며칠 뒤, 통화 목록을 확인하다
부재중으로 뜬 번호를 볼 수 있었다. 반년 만의 부재중 전화다.
나는 그녀가 왜 전화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그 이유만이라도 듣고 싶어 문자를 보냈다.
"왜 전화했어?" 바로 답장이 왔다.
"그냥 전화하면 오빠가 받을 거 같아서요"
"부탁인데 앞으로 전화하지 마!"
그리고 나는 또 한동안 심란해했다.
이별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마약보다 진한 그녀의 향수와 초콜릿보다 달콤한 음성,
내 손에 꽉 지어진 작은 손의 촉감이 너무 선명하다.
사실 그녀는 날 떠나간 당시나 지금이나 한 번도 날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에 대한 감각들은 시간이 지나도 희석되지도 않는다. 젠장.
이렇게 그녀를 밀어내면서 힘을 소진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왜 항상 떠나간 사람만이 특별하고 새로이 내 삶에 들어온 사람은 그리도 시시할까?
비워야 채워진다고 했던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새로운 이 사람이 결코 예전의 그녀보다 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닐진대..
내가 과거의 그녀를 비워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존의 그녀가 내 마음에 깊이 파고들 공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가려졌던 것이 보였다.
난 먼 훗날 과거의 그녀와 웃으며 차 한잔 할 수 있는 날을 막연히 그리고 있었으며,
언젠가 내가 책을 쓰게 된다면 감사의 말에 꼭 그녀의 이름을 넣을 거라고 한,
지난 약속을 아직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매번 이런 작은 불씨들을 남겨둔 채 큰 불을 끄려고 부산을 떨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이제야 분명해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도 버리고 과거의 약속 따위,
우연만이 허락하는 작은 만남의 희망까지도 모두 다 꺼 버리자.
그녀는 이미 죽었거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던 사람이 되는 것.
비움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