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의 겨울은 미치도록 춥다. 몸이 아플 정로 매섭다. 얼굴은 빨개지고 입에서는 김이 난다. 새벽 6시 나는 무장하고 산 중턱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향한다. 24시간 중 퇴근 전 마지막 두 시간이 제일 고되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산 속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다. 자동차의 라이터가 멀리서부터 고요함을 깨고 서서히 다가온다. 이 곳의 흙과 돌까지 다 얼어있다. 조그맣게 고인 물도 바짝 얼어 반짝인다. 한기가 뼛속까지 뚫는다. 이 추위를 버텨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위성에서 보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과 내 방 침대까지의 거리는 1cm도 안 되겠지? 여기 오기 전 이 시간 나는 따뜻한 내 방 두꺼운 이불에 파묻혀 엄마의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불과 몇십 km 떨어진 곳에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끔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난 왜 이 낯선 곳에 있지?’란 생각이 들었다.
조선소 경비는 낮의 많은 시간을 의무적으로 밖에 서 있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외는 없다. 날씨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실내에서 경험하는 날씨는 진짜 날씨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 시절 사무실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땐 왜 그게 좋은지 몰랐을까? 월급도 적고 매일 야근한다고 투덜댔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마주 보며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가끔 초소에 있으면 산 벌레들이 기어 들어온다. 거미들이 줄을 치고 두꺼비들이 큰 몸집을 드러낸다. 참 무위자연적이다. 직원들이 전부 퇴근하고 귀뚜라미 소리 요란한 밤이 되면 적막함이 찾아온다. 주위에는 온통 어둠뿐이다. 무전기에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조용함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세상과 단절되어, 버려진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쓰고 있다는 느낌은 소외감과 연결되었다. 절대 무서운 생각을 하면 안되었다. 여기는 나밖에 없다.
지나다니지도 않는 사람을 계속 경계하면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군대에서 경계 서는 군인들이 왜 미치는지 알 것 같다. 그 시간 삶의 의미가 급속하게 미약해진다. 사회복지사 시절, 사람들과 이리저리 부딪히고 크고 작은 프로그램을 설계했던 그 시간이 정말 그리웠다. 내 주요 업무는 사업 예산안을 짜고 센터의 모든 회계를 담당하는 것이었는데, 그 일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
나만큼 엑셀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직원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내게 물어보았다. 대표님은 날 좋아했고 나도 내 실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다. 그때는 적어도 매 순간 삶의 의미를 만질 수 있었다. 근데 여기는 내 특기와 역사가 모두 묵살되었다. 직업은 돈 만으로는 합리화될 수 없는 성질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도저히 조선소의 무료함과 자기 비하를 참을 수 없어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전화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