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 내 친구 한 명과 쌀쌀한 저녁 무렵 농구장을 배회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아 너네! 일로와 봐!”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무리의 불량스러운 고등학생들이었다. “야 너네 얼마있노? 맞기 싫으면 돈 내 놓고 가라!” 아 진짜 싫은 상황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 보여도 그래도 이제 곧 성인인데 고딩들한테 삥 뜯기는 좀 아니지 않나. 스무 살이라고 친절히 말해줬는데도 애들이 물러서지를 않는다.
이건 정말 쪽 팔리는 일이라 생각했던지 친구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러다 결국 한 대 맞았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모다구리 당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난 순순히 걔네들한테 있는 돈 다 털어주면서 “지금 가진 게 이거뿐이니깐 이제 그만하자.” 고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이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가 않았다.
난 조금 비겁하다. 불의를 봐도 잘 참는 편이다. 적당히 상황을 피하고 평화를 지나치게 추구한다. 나는 운전을 하다가 내가 잘못한 건지는 잘 몰라도 밖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예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누가 차 세우라고 고함 지르면 얄미울 정도로 엑셀을 더 밝는다. 그리고 그런 일들로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작은 체구에 싸움도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가끔 내게 '착하다' 혹은 '합리적이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건 내가 나쁜 행동을 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거나 카타르시스를 다 누리고 살만큼 힘이 세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이런 걸로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비겁함에 대한 죄의식이 많이 없어졌다. 뭐 어쩌겠는가? 이건 나의 어쩔 수 없는 오랜 무의식적 작용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처럼 잘 참는 사람들이 유리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직장 생활 할 때 악질적인 선임이 있었다. 그 사람은 성격이 이상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 사람의 의견에 반대를 하고 정의를 외친 사람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줬다. 그의 판단 미스로 문제가 커지면 그때 그 사람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고치겠지 하면서 최대한 그의 잘못을 더 키웠다.
나는 외부 상황이 모든 것을 해결하게 놔두는 스타일이다. 만약 외부 상황이 해결 못할 일이라면, 나도 그런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의지나 정의감 만으로 골치 아픈 일을 바로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사뿐히 그 일을 피한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누구에게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경찰이나 보험회사에 전적으로 위임한다. 내가 사장이면 직원에게 월급을 안 주면 그만이고, 알바생이라면 일을 안 하면 그만이다. 내 몸이나 정서가 다칠 수 있는 다툼은 되도록 피한다. 감정 다 빼고 최대한 법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모든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초코파이 하나 때문에 싸우는 어른을 본 적 있는가? 나는 본 적 있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매 순간 힘들어한다. 모든 인간 관계가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수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내 돈 만원을 빌려가면 그 돈을 갚을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한다. 누가 자신에게 스치듯 한 반말에도 괴로워한다. 그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질서 정연하게 정돈될 때에만 사람들은 비로소 일상의 평정을 찾는다. 그 사이 한 오백 년이 지난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할까? 네가 나보다 조금 더 이익을 가져가도, 조금 더 잘 나가도, 내가 조금 무시당해도, 정의가 조금 침해당해도 살짝 모른 척 하면 온 지구가 평화로울 텐데.
약자나 병자를 보고도 동정이나 죄책감을 꼭 가져야 할까? 물론 그건 필요하겠지만 지나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난민이나 북한 아이들까지 어차피 내가 다 보살필 수도 없다. 사소한 것 신경 쓰느라 이 자연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우리도 그들만큼 불쌍하고 위태롭다. 다 자기 삶의 몫이 있다. 죄책감도 심하게 가지지 말자.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우선 행복해야 남들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비겁한 것이 오히려 정의로운 것보다 더 힘들고 용기 있는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비겁했지만, 그 방식이 괜찮았기에 나는 이제 내 의지로 비겁함을 선택하려 한다. 좀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이 세상이 제법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모든 손톱 같은 일까지 다 정의롭게, 올바르고 빳빳하게 펴려고 하다 보면 현재를 느낄 수가 없다. 내 몸이, 내 마음이 다치면 세상의 웅장한 비주얼과 푸르른 녹음을 여과 없이 전달받을 수 없다. 햇살 좋은 날 누군가의 시기, 질투, 무시 다 관심 꺼버리고 오로지 거대하고 아름다운 것에만 심취했으면 좋겠다. 사소한 감정들도 그 빛에 다 사라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