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by 참새

2005년도에 부산에 폭설이 온 적이 있다. 내가 하필 그때 부산에 일이 있어서 갔다. 세상이 전부 다 하였고 교통도 다 마비가 되어 그날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서 헤매기도 하였다. 그때 유독 심한 공황이 올라왔다. 엄청 피곤한 상태에서 정신 못 차리고 힘들었다. 민박을 겨우 잡고 이불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그제야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 도로에서 스트레스 받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민박집에서는 불안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밖에는 눈이 펑펑하고 길도 미끄러지고 모든 것이 엉망이었지만 나는 이 따뜻한 이불 안의 아늑함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 공황의 패턴은 항상 이 때와 같았다. 일단 온 힘을 다해 내 외부적인 상황을 걱정을 한다. 그것은 불안한 미래, 지금 아닌 죽음, 과거의 트라우마, 심지어 바깥의 날씨까지 다양하다. 지금, 이 순간의 내 눈 앞의 것은 하나도 없다. 그 걱정은 내 턱밑까지 차올라 숨통을 조여올 때까지 지속된다. 그러다 내가 진짜로 죽을 것 같을 때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멈춘다. 미치기 직전에야 눈 앞의 사물이 뚜렷해지고 스치는 라디오 음성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내 마음이 진정이 되고 현재에서 충분히 위안을 받으면 또 그 리프레쉬된 에너지로 내 밖의 걱정과 죽음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다 알면서도 같은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인간이 닭대가리보다 나을 게 사실 없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항상 있어왔다. 고개를 90도 들어서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반경 1m 안에 행복이 놓여있다. 손을 뻗어서 그것을 잡기만 하면 된다. 밖에서 천둥이 치고, 270mm의 폭우가 창을 마구 흔들어도, 시선을 절대 밖으로 돌리면 안 된다. 안 쳐다보면 그만이다. 창 밖의 날씨와는 상관없이, 설령 창 밖이 화창하다 치더라도 이 순간, 이곳은 온전히 아늑하며 어디보다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다.


지금 이 공간이 갑갑하다고 생각말자. 밖에 뭔가 특별한 것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도 말자. 여기에서 행복을 못 느끼면 밖에 나간다고 해도 별 거 없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간적 미래와 공간적 우주 같은 것들도 사막의 신기루와 같다. 다 허상이다. 프랙털을 아는가? 온 우주가 이 작은 공간에도 존재하며 현재와 미래는 공존한다. 현재가 시시하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더 넓고 특별한 외부를 찾아 내 영혼을 향해도 그 곳에는 사막의 휑한 바람과 거친 모래만이 흩날린다. 여정의 끝은 결국 고통이며 피곤한 내 다리는 파랑새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현재에 더 집중을 하면 가려졌던 환상이 실체를 드러낸다. 어차피 내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그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금, 이 순간에 지겹도록 올인하면 어느 순간 매직아이처럼 끝 모를 행복이 드러난다. 인내하고 기대하는 만큼 행복해진다. 조급해하면 안 된다. 행복은 여기서 한 순간도 벗어 난 적이 없다. 물 한 잔 마시며 천천히, 그리고 유심히 1m 안에 포착되는 어느 것에나 정신 집중을 하면 된다. 궁극적 행복은 여기에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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