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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10. 2015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아침 6시 10분 어김없이 알람소리가 귀가 따갑도록 울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자고 싶어 알람을 10분 뒤로 다시 맞춰 놓는다. 그래도 별수없다. 나는 이 알람소리와 함께 무거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나른한 잠에서 깨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세수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내 생애 처음으로 왕따의 경험을 알려준 맥도날드로 출근을 한다. 그 곳에서 나의 하루는 차디찬 냉동실에서 감자 10박스, 불고기 2박스, 상하이 1박스, 텐더, 너겟.. 무거운 식재료를 주방으로 옮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냉동실 안에서 하는 이 작업은 진짜 춥고 서럽다. 이 모든 의무의 시작을 친절히 암시해주는 알람소리는 분명 내 고통의 진원지가 확실하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고 힘들고 복잡한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이 또 있을까?


나에겐 알람소리가 하나도 하나도 무겁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때, 알람을 따로 맞추지 않아도 당시 여자친구의 달콤한 목소리가 내 아침을 깨워주었다. 아침 햇살이 반가웠고 아침이 설레었다. 세수를 하면서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일이 나에게 벌어질까?’ ‘대학 동기들과 어떤 게임을 하면서 놀까?’ ‘여자친구와 뭐 하면서 놀까?’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하였다. 그땐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 1교시 수업에 참석할 만큼 지금보다 훨씬 더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당시는 항상 삶에 ‘부푼 기대’를 안고 인생을 최대한 즐기면서 살았으니깐.


물론 살다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대학 새내기 시절처럼 다 즐거울 수는 없다. 분명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99% 이상 존재하게 되어있다. 내가 예전에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경비아저씨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FM대로 열심히 사명감을 다해 일하시는 것이었다. 본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익숙해지면 편법도 쓰면서 타성에 젖어 대충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아저씨는 사소한 업무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시는 것이었다. 내가 하도 신기해서 이렇게 물었다.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세요?’ 그러자 그분 대답이 ‘이만한 일도 열심히 안 할거면 인생은 왜 살아?’ 그 말은 정말 인상 깊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분은 반복적이고 의무적인 경비 일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으며, 최소한 아침 알람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가 22살 때, 저녁 7시에서 새벽 4시까지 바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일이 너무 힘들어 같이 일하는 여직원 한 명을 억지로라도 좋아해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그 아이가 좋아졌고 출근할 때도 그 아이를 보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니 고된 생활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때 나는 아무리 힘든 일도 그 일을 좋아할 만한 어떤 계기를 찾아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내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군대에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곳에선 혹독한 훈련과 고단한 작업의 연속으로 도무지 즐겁지가 않은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생활을 진짜 즐기는 사람도 보았다. 최소 2년 가까이 피할 수 없는 세월을 그저 한결같이 힘겹다고만 여긴다면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버거울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마음을 고쳐먹는 편이 낫다. 그러면 처음엔 두려웠던 훈련도 나중엔 여유부리고 즐기면서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군대나 우리 삶이나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최악의 고통마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무엇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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