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일요일 독서클럽 사람(마르슬랭, 뷰티, 겨울햇살님)들과 인도 음식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참새 단톡방에 항상 있으니깐 밥 먹자는 말이 나오면 바로 약속이 잡힌다. 다른 분들에게도 연락하고 싶었는데 너무 갑자기 일정이 잡혔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치킨 마실라, 달 커리, 버터난, 갈릭난, 비리야니, 그리고 라씨였다. 엄청 많이 먹었다. 그 자리에서 8월 달 부산 록 페스티벌에 놀러 갈 계획도 짰다. 젊은 사람들이란 그런지 추진력이 좋다. 밥 다 먹고 나서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고 해서 노래방도 갔다. 90년대 노래도 많이 불렀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다들 너무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친해졌을까? 신기하다.
내가 처음 ‘창원 독서’라고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가 2013년 9월인가? 쯤 되었다. 그때 조선소에 있었는데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2명의 여자 후배와 7년 정도 좁고 깊은 인간관계만 맺다가 걔네들 다 날 떠나가서 패닉이었다. 외로움이 심연 끝까지 내려갔다. 가만히 있어도 불안했다. 나는 정신 건강을 위해서 서예도 배웠다. 거기서는 조용히 명상하고 사람들과 가족처럼 같이 밥을 자주 먹었다. 대부분 40~50대였다. 난 그 고요함 속에서 아무 재미나 의미도 찾지 못했다. 내 속에 분출할 에너지가 가득했다. 내 이상 증세는 더 심해졌다.
독서클럽을 찾은 것은 궁여지책이었다. 내 첫 모임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였다.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그냥 한 장소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참 신선했었다. 사회적 계급을 가리지 않는 따뜻한 보헤미안적 모임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 그래프가 아주 조금씩 상승했던 것 같다. 처음 그 인터넷 카페의 동영상을 보니 친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같이 맥주를 마시고 농담하며 놀았다. 그때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근데 지금은 내가 그 술자리의 한 복판에 있다.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다 보니 위축되었던 자존감도 회복되었고 외로움도 깨끗이 사라졌다. 신경정신과를 언제 마지막으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창원 독서클럽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요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좋다. 이런 느낌 몇십 년 만인 것 같다. 드디어 내가 원했던 삶을 사는 것 같다. 다음 브런치에 접속하니 새 구독자 수가 10명이나 늘었다. 내 글을 받아보는 사람이 매우 빠르게 늘고 있다. 한 글에 10개 이상의 댓글이 한 번에 달렸다. 댓댓글을 달리기 버거워 그냥 놔두기는 처음이었다. 거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오프라인 사업도 긍정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업 하기는 한다. 부모님이 안 도와주면 내 자본으로 하겠다는 의지로 밀어붙였다. 비록 내가 원했던 장소와 조건은 아니지만, 우리 아파트 상가 지하 작은 사무실에서 ‘복합문화커뮤니티 참새’를 8월 달에 오픈한다. 보증금은 엄마가 주고 월세는 내가 내기로 했다. 거기서 시작은 글쓰기 모임과 무료 심리 상담, 오프라인 게임, 프리마켓 등을 할 예정이다. 차차 내가 상상했던 모든 것을 원 없이 해볼 생각이다.
지금 또래들과의 어울림, 오프라인 모임들, 무료 상담, 단체 카톡방 프로그램도 다 마음에 든다. 이거 거의 다 내가 인터넷으로 사람 모집해 만든 것들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내 상황이 최악이었는데, 내 스스로 불우한 환경을 개척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정말 대견하다. 앞으로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