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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Feb 17. 2016

피하지 말자

36년을 살면서도 창원 밖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딴 데 가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서울에도 딱 세 번 가봤는데 그때도 오래 있질 못했다. 내 인생에 비행기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갈 때 죽을 각오하고 딱 한번 타 봤다. 친구들도 나랑 어디 놀러가는 걸 포기했다. 나는 심각한 공황장애였다.      


높은 곳, 막힌 곳, 트인 곳에 혼자 있는 상상은 나를 미치게 했다. 내가 설정한 안전한 그 장소나 상황에서만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안 듣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지나치게 덥거나 춥거나, 짜증나거나, 보도블럭이 뾰족하거나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도 불쑥 공포는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도 슬펐던 게 아니라 오로지 무서웠다. 나는 여친에게 “부탁인데 네 말 이해했으니까 제발 ‘헤어지자’라는 그 단어만 뱉지 말라”고 애걸했다. 그 단어는 내게 있을 수 없는 금기어였다. 나는 이 세상에 뭔가 절대 ‘안 되는 것’들이 유난히 많았다. 내 예상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때 나는 마비가 될 정도로 떨었다.           



어느날 법륜스님의 책를 읽는데 책 속에서 한 여자가 ‘남자와 궁합이 안 좋다는 데 어떻게 하나?’ 고민할 때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궁합이 안 좋아서 너네 결혼하고 일주일 뒤에 남편이 죽는다고 치자!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일주일이라도 살아봤다는 게 좋은 거 아니가? 좋아하는데도 마음에 두고 말도 한 마디 못 해보고,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도 많은데” 라고 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그뿐만이 아니라 남편이 바람 피워도 잘생긴 이 남자와 같이 사는 나는 행복한 최대주주이다. 남편이 술 마시고 깽판쳐도 그런 모습까지 다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내라. 술이 부족한지 물어보고 술상을 더 내줘라. 상대방이 내 돈을 빌려서 안 갚으면 찾아가 돈을 더 보태줘라.      


책에서 이런 말들을 계속 무한으로 듣고 있는데 어떤 카타르시스가 몰려왔다. 나는 이 세상에 안 되는 것들이 그렇게 많았었는데 스님은 웬만한 건 다 된단다. 진짜 싫고 피하고 싶었던 그것을 오히려 더 하라고 하신다. 나는 최악의 일들을 피하는데만 온 시간과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 스님은 그 불가능한 일들을 받아들이라 하신다. 내게 견고한 성 같았던 그 금기가 한낱 고정관념이었나? 내가 지금껏 온 힘을 짜내고 나를 혹사시키면서까지 금기한 것들이 그 정도 배척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나?      



내 공황이 낫기 시작한 것은 내 친구가 내게 했던 말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나?’ 이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길 가다가 사고가 일어나면 어쩌지? 건강이 악화되면 어떻하지? 미래의 내 삶이 암울하고 허약하면 어쩌지? 내 이런 만성적인 걱정들은 두려움을 낳고 그것은 내 목숨을 위협했다. 내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내 대단한 목숨이었는데 친구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때부턴 고통, 죽음을 피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내 인생의 반전이었다.      


물론 내가 그 무서운 것들을 받아들일 깜냥이 아직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냥 그것을 피하지 않는 내 태도만 있으면 된다. 말뿐이라도 좋으니깐 ‘죽기밖에 더하겠나’라고 내 자신에게 말하고 노트에 적으면 신비롭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저항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걱정, 죽음조차도 나를 전혀 괴롭히지 않았다. 그때 나는 확실히 죽음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들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감정이 먼저 이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 행해지는 것이다. 나는 내 까르마대로 항상 피하는 행동이 자동으로 나타났다. 어떤 현상, 사물이 뭔지 잘 보지도 않고 일단 그것을 피하고 보았다.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피하니깐 무서워졌던’ 것이다. 그러니 저절로 실체 없는 공포가 공기처럼 나와 함께 숨 쉬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을 한 뒤 나는 내 가슴에 용량 큰 폐가 하나 부착되었다. 답답하던 숨이 탁 트였다. 피하지 않으니깐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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