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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16. 2016

우울증은 사치다


예전 tv를 보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의 가족이 굶어 죽어서 그를 묻어주고 우는 장면에서 
'저들이 매우 비참하며 슬프겠구나! 하고 잠시 느낀 적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처음 공황장애라는 병에 걸렸을 때, 
나는  공황이 올  적마다 '이제 곧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쓰나미처럼 공황이 나를 관통해 지나고 나면 
그 이후에 나타나는 감정은 희한하게도 열반에 가까운 쾌락이었다. 
마치 죽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나와 같은 느낌을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였으니까. 


그때 난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부터 내 시선은 오로지 현재에만 머물게 되었다. 
이건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오늘 당장이라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니깐 
삶의 작은 부분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매일 전쟁을 치르는 듯한 긴장감과 엄청난 경계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이 불행하다거나 비참하다거나 우울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 인지행동치료 집단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A양  : 그러고 보니 내가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한 가지 도움이 된 것이 있어. 
참새 : 매일 매일이 공포인데 좋은 게 뭐가 있겠어요? 
A양  : 내가 공황장애를 앓기 전에는 정말 지독한 우울증이 있었거든.. 
      근데 공황장애가 찾아온 뒤로는 우울증이 깨끗이 없어졌어. 신기하지? 
참새 : 그게 왜 그럴까요? 
A양  : 우울증을 신경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인 것 같아.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공포와 싸워야 하는데 우울한 마음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있겠어?  
 

(안 좋은 느낌에 시간 투자나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 그 지독한 것들도

점점 그 사람에게 멀어지나 보다. 원래 우울증이란 놈이 공황보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이고 서서히 내 정신을 오염시키는 어찌 보면 더 무서운 놈이다 ;;)


암튼 아까 언급했던 아프리카인들도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 남아야하나를 걱정하는 
치열한 자급자족적 삶 속에서,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난민들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좌절을 느끼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난 아프리카에는 우울증이 아예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오히려 복지가 발달한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국가들이
빈곤하고 어려운 나라보다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뭐든지 안정적인 여유가 있으면

그때부터는 무기력함이 들어올 확률이 높고 그것은 야금야금 내 행복을 갉아먹게 된다. 


자연에서는 사납고 민첩한 맹수인 사자가 동물원에서는 그 본능을 상실하여 둔감해지듯이  
인간이 여러 가지 생존이 필요한 본성에서 무뎌지게 되면 그만큼 강렬한 스릴도 사라진다.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고

위험한 여행을 하는 이유도 그런 깨어있는 열반을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 경험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과정이므로 
더 욱도 무디어진 우리의 감각에 말초적인 자극을 가해 짜릿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면 우울한 기분도 한결 나아지겠지. 


그러니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나 
치열한 삶의 경험도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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