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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18. 2016

의무 부정

요즘 사업과 오프라인 모임에도 소홀했고 글도 일체 쓰지 않았다. 그저 계속 멍 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에 약한 공황이 왔기 때문이다. 공황이 오면 내 생활이 all – stop 된다.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계획을 세운다든가 이미 주어진 일도 실천할 의욕이 사라진다. 공황은 항상 내 인생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였다.


처음 녀석이 왔을 때도 그랬다. 그때 나는 연합고사가 코 앞인 중 3 모범생이었다. 한 학원 선생님이 나보고 조금만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엄마도 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학교 마치면 바로 학원을 갔고 수업 다 마치면 밤 11시였다. 난 경쟁에 시달렸다. 학원에서도 소수정예 반이었다. 항상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공부를 했다. 피곤한 밤이면 바람도 안 통할 것 같은 좁은 교실에 억지스러운 형광등이 쏟아지고, 차가운 회색 벽과 뾰족한 책상, 화이트 보드, 샤프가 나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어리고 약한 내가 그 무게를 너무 무리해서 끌고 갔던 것일까? 16살 9월의 어느 밤 내 삶은 마비가 되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 하루 만에 나는 시험, 공부, 성적, 진학 등 나를 사방에서 쥐어짜던 모든 것들을 집어 던졌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난 익숙했던 세상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오늘 하루만 버텨내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아니 딱 지금 이 순간만 살고 보자, 이 순간을 견디기 위한 에너지와 호흡으로 버티었다. 그렇게 다시 점점 숨이 길어져 갔다.


19년이 흘렀다. 지금도 내가 어떤 의무에 시달릴 때면 어김없이 공황이 찾아온다. (지금은 공황으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니깐 어릴 때처럼 심하게 겁먹지는 않는다) 녀석은 내게 말한다. “넌 지금 너무 미래에 사로잡혀 있어. 일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인생이 뭐 그리 긴 줄 알아? 내가 왔으니 현재를 즐기면서 편히 쉬어!”


생각해보니 최근 내가 책을 출판하려고 조급해했던 것은 빨리 자리 잡아서 결혼도 하고, 날 떠났던 두 여인에게 복수도 하고, 힘든 아르바이트도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어서인 것 같다. 그래서 글도 쓰고 싶다기보다는 ‘써야  한다’라는 의무가 컸던 것 같다. 내가 한창 글을 써내려 갈 때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1~2개 수필을 쏟아냈던 것 같다.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던 것 같다. 글쓰기 모임 해보니깐 사람들이 일주일에 작은 글 하나 쓰는 것에도 버거워하더라. 그러니 나는  그동안 날 얼마나 혹사시킨 것인가? 공황이 오고 나서야 나는 또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했다.


나는 당분간 나태해지기로 결심했다. 어마어마하게 할 일이 많음에도 그걸 다 내려놓고 손 놓고 있을 때 묘한 쾌감이 찾아온다. 그 느낌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공황이 죄책감도 막아준다. 온전한 휴식은 공황이 선사하는 것이니 난 그에 감사해야 할까? 난 지금 참 평화롭다.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일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일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 불 보듯 뻔하고 그게 심해지면 또 공황이 올 것이다. 이건 정말 잔인한 운명이다.


이번에는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본다. 내가 분명 해야 할 일들은 있겠지만 나를 매섭게 조여가면서까지 그 일을 억지로 하지는 말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또 즐겁게 잘 하지 않았는가? 일이 일로 인식되면 스트레스이다. 그러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할 것이 있더라도 ‘그 일이 하고 싶을 때까지 최대한 기다렸다가 하자!!’ 지금 이 관념이 공황을 최대한 늦춰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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