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학다식하잖아. 오빠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고 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남편은 자기가 모임에서 듣고 온 뉴스나 새롭게 알게 된 걸 나한테 알려주다가 내가 이미 알고 있거나 더 자세히 답하면 깜짝 놀라곤 했다. 누가 봐도 나보다 스펙이 좋고 가장으로 돈을 버는 남편에게 퇴직을 하고 전업주부가 된 나는 혼자 속으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가끔 흐뭇하게 잘난 척? 할 때는 이런 순간이었다. 치과의사인 남편은 자기 전공 관련된 책은 계속 찾아보고 공부했지만, 그 이외에는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연예인 가십 같은 것도 아예 관심이 없고 (남의 일에 관심이 별로 없다) 좋아하는 축구나 배구 같은 스포츠 경기 시청 그리고 좋아하는 웹툰 몇 개 보는 거 이외에는 다른 여러 가지에 흥미를 두지 않는다. 반면에 나는 한 가지 분야에 내가 가진 전문성이 있다고 할 게 없지만, 다양한 많은 분야에 조금씩 알고 주워듣고 관심이 있는 편이다.
지금은 전업주부로 지내는 나는 몇 년 전까지 초등교사로 일했었다. 초등교사 직업 특성상 여러 과목을 가르치고, 여러 가지 일을 일과 중에 해야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여러 가지를 얕지 만 만 다양하게 아는 편이었다. 초등 담임으로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여러 가지를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제너럴리스트가 되었는지,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직업 특성상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아도 전후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의 직업일 줄만 알았던 교사를 몇 년 전 그만두고도, 여전히 무언가를 조금씩 배우러, 체험하러 집 밖을 나가는 걸 보면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게 분명하다.
교사일 때 나는 내가 배우는 것은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영향이 될 밑거름이라 생각했다. 5학년을 가르칠 때는 역사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한국사 능력검정 시험 1급을 따기도 했다. 6학년 영어 전담 수업을 할 때는 아이들의 영어학원 숙제 기습 질문에 부끄럽게 되지 않기 위해 집에서 Grammar in use 책을 밤마다 공부했다. 가르치는 과목 중에서는 특히 개인적으로 영어를 좋아했다. 초등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근무할 때 교육대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심화로 전공했고, 영어 전담으로 근무했을때는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올드 팝송과 유행하는 팝송 영상을 감상하게 하고, 가사를 알려주며 단어를 가르치고 함께 부르곤 했다. 그런 수업 자료를 준비하며 내 실력도 는다고 생각했고, 아이들도 새롭게 배우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내 교직관, 내 모토는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자라는 것이었다. 영어가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던 아이가 몇 달이 지나 선생님께 영어를 배워서 재밌어졌다고, 더 잘하게 된 거 같아서 고맙다며 땡큐 티쳐~라고 적은 편지를 주었을 때 내 직업- 가르친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고 뿌듯했다.
지금은 교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며 전업주부가 되었고, 아이들이 등원, 등교한 시간에 무언가를 배우러 가고, 또 어떤 것은 같이 배우고 체험해 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배움을 통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배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거 같다. 그런데 교사일 땐 내가 배운 걸 가르쳐서 돈을 벌었는 데, 지금은 내가 이것저것 배운다고 해서 돈을 주지 않는다. 학교에 가서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받지 않는 배움이기 때문에 나에겐 배울 의무도 없고 배움의 선택에 자유가 무한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안 배운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배우고, 심지어 돈을 내면서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걸까? 순수한 배움의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이루지 못한 어떤 꿈을 다시 찾고 싶어서 계속 배우고 탐색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