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찬투정
투정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마땅치 못하여, 떼를 쓰거나 조르는 것을 말한다. 반찬투정은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직접적으로는 말을 못 하고 괜스레 말 못 하는 반찬을 상대로 투정을 부리거나 화풀이를 하는 경우다. 화풀이로 우리는 가끔 반찬투정을 한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이야기다.
5 촌댁, 시골집으로 양자를 갔다. 5 촌 아저씨는 6.25 전쟁 때 전사하셨고, 아주머니도 뒤 이어 돌아가셔, 대를 이을 후손이 끊긴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대를 잇기 위해 입양된 것이다. 집에는 혼자이신 할머니와 출가한 딸이 친정에 와서 엄마를 도우며 살고 있었다.
열세 살 꼬마가 부모 슬하를 떠나 남의 집에 와서 산다는 것은, 아무리 식구들이 잘해준다고 해도 서럽고, 또 집 생각이 절로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가에 그냥 있으면 중학 엘 갈 수 없고, 이곳으로 양자를 오면 중학교에 갈 수 있다는 희망과, 집에서 형들에게 구박받는 것보다 여기 오면 할머니가 잘해주시니까 정 붙여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엄마 곁을 떠나 양자를 온 것이다.
할머니는 생가 할아버지의 제수 (동생의 부인) 되신다. 동생 할아버지도 이곳으로 입양되었으니 할아버지와 나는, 2대에 걸쳐 이 집으로 양자를 왔다. 그러니까 이곳과 우리 집은 먼 친척이 아닌,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양가(兩家)에서는 내가 4학년 일 때부터 서서히 준비를 했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는 이곳으로 놀러 오게 하여,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당시만 해도 모든 학생이 신고 싶었던 감색 운동화도 사주고, 참외나 수박 같은 먹을 것도 주면서 정들게 해 놓고는, 6 학년이 되니까 정식으로 입양시킨 것이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어서 가는 먼 길이었지만, 중학교엘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멀다는 투정도 안 하고 같은 동내 애들과 어울려 잘 다녔다. 일요일이 되면, 집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물 지게질을 하여 집안에서 써야 할, 물을 길어다 물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시간이 나면 할머니나 고모가 하시는 일을 도와드렸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에 아무도 없고 텅 비었다. 식구들은 밭에 나가 일을 하시고, 나 혼자만 집에 있었는데 저녁녘 깜깜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늦게 집에 도착하신 할머니와 고모는 늦은 저녁을 해놓고 나를 깨웠지만, 곤히 잠든 나는, 여러 번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고 그냥 자버렸다. 당시만 해도 미역국은 특식였는데, 미역국이라고 하면서 몇 번을 깨워도, 안 먹는다며 그냥 잠을 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깨어난 나는, 어젯밤에 어른들이 집에 오시기도 전에 잠을 잦고, 또 밥을 차려놓고 여러 번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고 그냥 자버렸다고 꾸중을 들었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미역국까지 끓여놓고 깨웠는데도 안 일어나서 몹시 서운해하셨던 모양이다.
그 일이 있고부터 미역국만 보면,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마음 한 구석에 석연치 못한 것이 남아서 인지, 미역국을 안 먹는다.
양자 와서 먼 길 학교도 불만 없이 다녔고, 물 짓는 것, 동생 보는 것, 나무 하는 것 등등, 나름에는 잘한다고 했는데, 잘했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내 딴에는 학교에서 애들의 따돌림을 이겨가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늦게 돌아왔는데 반기기는커녕 제 때에 밥도 안주나 싶어서 서운했던 것이다.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고 서러움이 북 바쳤던 것이다. 그래서 심통을 부렸던 것이다. 원래 미역국을 좋아했는데, 이런 일이 있고부터 미역국을 멀리하는 것을 보면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서 남의 집에 가서 살게 되면, 작은 일에도 마음을 크게 상하구나 하고 회상한다.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했어도, 이따금 반찬투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금은 미역국도 잘 먹고, 특히 싫어하는 반찬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반찬투정을 하다가 아내에게 들켜 괜스레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이 서먹하기도 하고, 심하면 언쟁이 되기도 한다.
옛날 구치소에서 첫 배식을 받던 때의 일이다. 철창문 아래쪽, 개구멍 같은 배식구로 식기를 내밀어 밥을 타고, 국그릇을 밀어내 국을 받는다. 밥은 쌀과 보리가 반반으로 썩였는데, 내 눈에는 까만 꽁보리 밥으로 보인다. 국그릇에는 된장국에 손가락만 한 멸치가 두 개 떠있고, 반찬으로는 장기알 만한 깍두기 서너 개가 나오는데, 이것이 밥상의 전부다.
정성껏 차려주던 밥상에 여럿이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더니, 혼자 꽁보리 밥상 앞에 앉아, 된장국에 떠있는 멸치를 보면서 서글픈 생각을 한다.
“이러면 안 되지. 먹어야 돼” 하면서 억지로 숟가락을 들어도, 국과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진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느님은 나를 여기에까지 불렀을까?”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앉으나 서나 이 생각뿐이다
일주일을 꼬박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전 국회의장이던, 이 효상 선생님의 글을 읽고, 크게 깨닫는다.
내 뜻대로 살면 잘 될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잘되고 행복하려면 반드시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말씀이다.
“휘 아트 볼륨 타스 투아”
“주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그래 이거야”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거야 “
나는 아직까지 말로만 천주교 신자지 당신 뜻대로 산 적이 없어, 내 뜻대로만 산거야.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하는, 어쩌면 나는 주인이고 당신은 나의 하인 같은 하느님였어. 그래서 당신은 나를 당신 뜻대로 살게 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나를 부르신 거야!
나는 이제 당신의 뜻을 알았으니, 오늘부터는 죽을 때까지 당신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약속으로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당신의 말씀인 성경을 읽겠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과, 새사람이 되기로 굳게 약속합니다.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나를 이곳에 부르신 이유 임을, 나는 오늘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된장국이 맛이 있고, 깍두기도 맛이 있다.
사식으로 들어온 김을 밥에 싸서 먹으면, 꽁보리밥도 맛이 있어서 언제나 식판을 싹 비웠다.
45일간의 구치소 생활은 나의 반찬투정을, 감사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공연히 바쁘기만 하고 성과가 나지 않을 때는, 누군가에게 핑계를 대고 괜스레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집에 오면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고, 밥상이 들어오면 반찬투정을 하고 싶다. 옛날부터 몸에 배었던 일종의 어린냥이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툭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럴 때는 조용히 반찬투정을 하는 나를 응시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휘 아트 볼론 타스 투아.”
“주님 제 뜻대로 하지 말고 당신 뜻대로 하게 하소서.”
반찬 투정이나 핑계를 남에게 대고 싶을 때 하는, 나의 呪文(주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