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부 싸움
1987년 7월, 아내가 한 기업인을 소개했다.
경남 양산 소재, ‘대한정공’이라는 회사의 사장였다. 금형을 만드는 중소기업 대표였는데 업종이 단순하여 새 업종을 찾고 있는 중 이라면서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출근정지 3개월로 곧 백수가 될 형편이었는데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할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22 년간을 하루같이, 근무하던 회사를 출근정지당하고 집에서 쉴 때, 그렇지 않아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면서 어디에라도 부딪쳐 보고 싶었는데, 이때 대한정공 박사장을 소개받은 것이다. 박사장은 만나자마자 자기 회사에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하던 차에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으니 얼마나 달콤한 이야긴가?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아내는 나의 수락에 조건을 달았다.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은 좋은데, 투자하는 조건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알았다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모면했다. 근무를 해 보지도 않았고, 어떤 요구를 할지 들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결단을 내리기는 빠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 출근정지 기간 중에 몇 차례 대한정공에 들러서, 차도 마시고 담소도 해 보았다. 종업원 27명에 금형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였고, 부산에 있다가 양산으로 신축하여 이사한 지 몇 달 되지 않는 조그마하고 깨끗한 회사로, 외모로는 마음에 들었다. 만약에 내가 열과 성을 다하여 일한다면 남부럽지 않은 회사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전 직장에서 다하지 못한 나의 정열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10월 1일부터 생산이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고, 남들보다 1시간 늦게 퇴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출근 후 2, 3일이 되었는데 박 사장과 대화 중, 급히 막아야 할 어음이 생겨 그러니 돈 융통 좀 안 되겠느냐면서, 퇴직금은 얼마나 받았느냐고 묻는다.
사실대로 얘기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왕에 한 배를 탔는데 나의 이익만 챙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퇴직금은 정산 중이므로 곧 수령하게 될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잘 됐다면서 우리 회사를 법인화하려는데 투자할 용의가 없는지 묻는다.
아내가 그렇게도 신신당부한 건데 어떻게 해야 될지 멍하기만 하고,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좀 생각해 봅시다” 하고 자리를 떴지만 계속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박 사장은 또 이야기한다. 어음이 급해서 그러니까 좀 융통하자고, 솔직히 하소연을 한다. 당장에 못 막으면 부도라면서 이제는 아예 독촉을 한다. 성화에 못 이겨, 옛 직장에 전화를 했다. 총 부부 서무가 전화를 받고 답하기를, 오늘 오후에는 퇴직금이 지급된단다. 사람을 보낼 테니 대신 받아 오기로 약속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이것저것 다 떼고 오천만 원 남짓한 수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22 년을 근무하고, 받은 퇴직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박 사장의 손에 넘겼다. 그 대신 받은 것은 ‘현금보관증’ 한 장이다. 법인화가 정상으로 되면 후일 투자로 대체하고, 잘 안 되거나 사정이 생기면 현금으로 회수하는 조건이었다. 내 딴에는 의리도 지키고, 손해도 안 보는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여 아내와 상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한 평생 일하고 마지막에 받은 퇴직금인데 아내에게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저녁 식사 중에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여지없이 반격해 온다. “내가 그랬잖아요, 투자는 안 된다고”
이제 우리 식구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까지 줄줄이 학생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것은 알겠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그 사람을 소개한 사람은, 남이 아닌, 바로 당신이쟎아요?
회사가 부도난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합니까?
“집이라도 팔아서 해 줘야지!”
똑같은 이야기로, 답도 없는 부부싸움을, 연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속도 모르는 박 사장은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금전 이야기를 하다가, 이듬해인 1988년 1월 4일 부도를 내고 말았다.
처음에 아내가 기업인 박사장을 소개할 때에는, 남편의 기술력과 기존 중소기업 간에 서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상생(相生)하라는 뜻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너무 취약한 사정을 전해 듣고, 더 이상 상처 받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좋은 의미로 ‘투자 금지 조건’을 남편에게 제시한 것이다.
한편, 남편은 전 직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강제사직당한 분함을 일부라도 해소하고, 고생하는 아내와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성과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아내가 소개한 사람이기 때문에, 좀 무리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여러 사람 앞에서 보란 듯이 뽐내고도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남편 역시 아내를 위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결단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성사되는 데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작용을 하는데, 우리는 가끔 이 변수를 잊은 채, 심은 뒤돌아서서 곧바로 거두려고 한다. 심은 뒤에 결실을 맺기까지 기다려 주고, 북돋아 주고, 때로는 농약을 쳐서 해충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러고도 수많은 돌봄이 있어야만 원하는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게 되는데도 말이다.
내 사정이 급해 빠른 결실을 바라는 가난한 농부지만, 자연의 법칙이 그런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내가 나빠서 싸우는 게 아니고, 남편이 부족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뜸 들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결코 아내는 남편을 害(해) 하기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고, 가정의 평화를 위하고, 가정의 이익을 위해서 했을 뿐이다. 남편 역시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고, 가정의 앞날을 위해 의사결정했던 것이다.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서 보면, 아내의 생각과 남편의 표현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목적지는 같으나, 서로 처해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각자 서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상대와 나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충분히 의사교환을 하기 위해, 설득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서로가 숙성에 요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부 싸움으로 숙성의 시간을 서로가 가름했던 것 같다.
박 사장은 부도를 낸 뒤로도 원금은 갚을 생각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박사장을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서에서 빚 독촉을 했는데, 박사장은 차용 사실이 없다고 잡아뗐다. 다행히 “현금 보관증”과 받아 둔 “백지 수표”가 있어서 박사장의 거짓말이 들통이 난 것이다. 강제 합의로 반 타작은 할 수 있었지만 경험에 비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합의 후 나는 정식으로 “대한 동방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애초 계획했던 철강과 자동차 산업의 정비 관련 부품을 제조하고 있다. 아내의 소개로 알게 된 박사장은 그래도 나와는 깊은 인연이 있었나 보다. 회사 이름도 “대한 정공”을 “대한 동방 주식회사”으로 고첬고, 처음의 구상을 아직 까지도 유지하면서 실현해 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박사장의 덕택에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된 것이다. 박 사장과의 일이 없었더라면 나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이렇게 보면 부부싸움은 숙성의 과정이고,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부부 싸움을 일컬어 칼로 물 베기라고도 했고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라고도 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