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의 인연
우리는 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인(因)은 원인을 말하며, 나로 인한 행동이나 생각이 되겠고, 연(緣)이란 조건을 말하니 숙성되기 위한 주변의 여건을 말한다. 인을 씨로도 비유하고, 연을 밭이나 기후 등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똑같은 씨앗이라도 떨어진 땅의 조건과 풍토에 따라 수확의 양이나 품질이 달라진다.
인간이라는 씨앗도 태어나는 집안의 경제적 사정, 부모의 자질, 성장과정, 사회 환경 등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가 달라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굿굿하게 자라며 결실을 잘하도록 윗사람은 가르치고, 아랫사람은 그 가르침을 잘 배우고, 또 잘 실천하여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963년 4월 1일.
40 :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고려제지 주식회사’ 군산공장.
들어가는 입구가 아름드리 푸라타나스 나무로 빽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다.
당시만 하여도 일자리가 없어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이런 근사한 회사에서 일하게 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산업 근대화의 물결이 일고, 그 일환으로 공업학교를 나온 공채생을 실험대상으로 뽑은 것이다.
입사하자마자 우리는 공장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석탄 보일러로 증기를 만들어 종이를 건조시켰기 때문에 보일러 공장은 규모도 컸지만 석탄가루 분진이 산더미처럼 쌓여 어데가 어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분진을 삽으로 퍼서 바켙으로 담아내고, 바닥을 비로 쓸어 청소하니,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서로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으리 만큼 까매졌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씻는데 씻어도 씻어도 까만 물이 나온다.
오리엔테이션 과정 1주일을 마치고, 내가 배치된 곳은 초조실, 마신(Machine Room)이라고도 부르는 액상의 종이원료가 종이가 되어 나오는 공장였다.
당시 신문용지를 독점 공급하던 고려제지는 지방회사 치고는 대우가 좋다고 했다. 월급은 10일, 25일에 각각 15일분씩 지급했고 분기마다 상여금을 지급하는 관계상 돈을 많이 주는 회사라고 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 연말 특별상여금도 주고, 땔감으로 나무껍질도 주었다.
초조실에서 종이가 둥글게 감겨 나오면 저울에 달아 중량을 표기하여 다음 공정인 완정실로 보낸다. 완정실에서는 겉포장을 하기도 하지만, A4 용지 크기로 종이를 재단하는 일도 했다. 완정실에 여자 직원도 몇 분 있었는데 그중에 ‘김 옥례’라는 분 에게 정이갔다. 그분도 또한 나에게 말을 잘 걸어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어 금세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나이가 나보다 연상이어서 부담도 없었고, 또한 얼굴이 곱상하고 상냥하여 초조실 근무자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하루는 그분이 밖에서 만나자고 하여 나갔었는데,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였다. 가을 철이었는데, 퇴근 후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저녁이면 으레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라복을 입은 여고생이 자리를 함께 했다. 셋째 딸이라고 소개한다. 이후로도 저녁 때면 나가서 놀았지만 여고생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이 안되니 취직을 하라고 해서 시내 제일극장, 매표원으로 실습 중이라고 했다.
나는 덕택에 일요일이면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볼 수 있었고, 때가 되면 짜장면도 먹을 수 있어 조금씩 그녀와 정이 들어갔다. 아들이 없는 집이라서, 나는 시간만 나면 그녀 집에 가서 간단한 가구 수선도 해주고, 동생들 공부도 봐줘 가면서 어느새 집안 식구처럼 가까워졌다. 그러나 불러 줄 마땅한 호칭이 없어, 난 그 녀를 M이라고 불렀다.
이따금 자전거 드라이브를 한다. 직장 친구 희상이와 M의 친구 금옥이가 각각 한 쌍이 되어 자전거 두 대로 잘 포장되어 있는 군옥 도로를 달리다 보면 직장에서 꺼름찍했던 일들이 뻥 뚫렸다. 휘파람을 불고, 고함을 지르면서 8킬로 정도를 왕복하면 몸에서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이렇게 M 과의 사이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낯선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 날은 일요일 늦은 밤이었다. 극장의 마지막 매표를 마치고 M이 귀가하면 으레 늦은 시각이 된다.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M이 웬 낯선 남자를 데리고 불쑥 나타난 것이다. 깜짝 놀라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가족 모두를 향해 M이 입을 연다.
오늘은 담판을 지으려고 데리고 왔어요, 하면서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매일 극장 매표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끝나면 나한테 와서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부모님과 대면시키려고 일부러 데리고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입장이 미묘해졌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결투 사처럼, 왠지 한판 싸워야 하는 그런 장면이 연상되었다. 한참을 말없이 기다리다가 그 낯선 청년을 밖으로 불러 냈다. 마침 보름인가 보다. 휘영청 달이 밝아 상대방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자리를 하고 보니 서로가 똑같은 처지군요. 여기까지 찾아오신 것을 보면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용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여자 편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결정이 날 것 아닙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만일 당신 편을 들어준다면 나는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만일 나의 편을 들어준다면 입을 열지 말고 두 번다시 오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자는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예, 동의합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서 청년이 입을 열었다. 저는 장항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집에서 태어나, 지금 서울에서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졸업하면 장항에서 병원을 개업하려고 합니다. 작년부터 방학 때면 내려와 따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따남이 응해 주지를 않아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늦은 밤에, 이렇게 찾아뵈어 예의가 아닙니다만, 교제를 허락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면서 간절하게 호소를 한다.
부엌에서 찻잔을 들고, 들어오시던 어머니께서 말씀을 정리하여 주신다.
“우리는 자네가 오기 오래전부터 여기 있는 이 사람을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지금 잘 지내고 있네. 그러니 두 번 다시 헛 걸음 하지 말고, 다른 좋은 규수 만나 사업 잘하시게”라고,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정리해 주신다.
그 뒤로 나의 입장은 미묘해졌다. 한 번도 결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데 무슨 결혼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자를 가진 댁에서의 입장은 또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한 여자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의대생의 말’이 자꾸만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장항에 병원을 차려 따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교제를 허락하여 주세요”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나는 고려제지에 사표를 냈다. 그 의대생보다 더 M을 행복하게 해 주려면 지금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야간대학에 가서 공부를 더하고, 그릇을 키워야 하겠다.
장모님의 허락을 받아 고려제지 3년 근무를 마치고, 부산에 있는 연합철강에 입사하여, 제지인에서 철강인으로 탈바꿈하여, 22년간을 근무했다.
근무하면서 야간 대학을 졸업했고, 아들 딸 네 명을 낳았다. 현장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1974년 1억 불 수출 유공자로, 산업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한편으로 관리자로 인정을 받아, 동경 지사장, 업무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제그룹 MTPI로 그룹 내 부, 과장급 관리자 교육 및 훈련 강사로 재직했다.
언제나 아내 뒤에는 그 의대생이 겹으로 비쳐, 이 여인을 행복하게 해 줘야 할 의무를 나에게 無言(무언)으로 암시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의대생과 아내와 내가 만난 것이 ‘인연’이지만, 그 만남을 승화시키기 위해 내가 어떻게 마음을 쓰고 노력하느냐가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나의 몫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