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내가 낳은 또 다른 나
1. 내 마음 같지 않은 자식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내 마음 알아주겠지 하고 자식에게 기대를 건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지만, 나이가 들면 제가 옳다고 하며 부모님과 의견이 상충한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나’는 아니다. 아내나 남편이 내가 아니듯이 말이다. 자식도 나름의 인격이 있다. 내 마음에 합당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지만, 요구해서는 안 될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식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식의 위치와 내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에 필요로 하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래전 얘기다. 둘째 딸이 남자 친구를 데려고 왔다. 평생을 같이하고 싶단다.
키가 훤칠하고, 건강해 보여서 첫눈에 들었다. 부모님도 모두 계시고, 형과 누나가 있으나 모두 결혼하여 지금은 세 식구가 단출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학생이지만 취업도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고 하며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믿음직한 청년이었다.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약간 서먹해졌다. 딸애는 모태 천주교 신잔데, 남자는 불교 신자라고 한다. 당시의 천주교 교리에는 자식을 타 종교인에게 시집, 장가보낼 수 없고, 부득이 결혼을 하게 되면 속히 천주교인으로 개종 또는 입교를 시켜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청년은 천주교에 입교도 가능하다고 하며, 우리의 생각에 전반적으로 호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양가 부모가 만나서 인사하는 날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고 어머니는 몸이 좀 불편하시지만, 우리의 손목을 덥석 잡으시는 활달한 성격이었다. 여기서도 신앙 이야기가 나왔다. 부모님은 불교 신자라면서 우리의 종교를 물으신다. 천주교 신자입니다 라는 답변에 실망했다는 태도로 고개를 저으신다.
곤란한데요. 이 결혼은 안 되겠는데요 라고 하신다.
청년의 부모님은, 천주교 예수교 등의 기독교인 하고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신다.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겨를도 없이, 차린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없던 일로 하면 되겠지 하고 크게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며칠이 지났는데 청년과 딸애가 함께 집에 찾아와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에 대하여 유감을 표시한다. 아버지의 의견과는 달리, 우리는 결혼을 하겠다며 다시 간청을 한다. 원하시면 천주교식으로 세례도 받고, 절차에 따른 혼배 예식을 치르겠다면서. 강하게 뜻을 표시한다.
주말에 조용한 시간을 내서 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천주교 집안에 불교 신자가 들어오면 여러 가지로 이견이 생겨 불목 하기 쉽고, 너 역시 불교집안에 천주교인이 시집가서 살려면 고생이 심할 텐데, 이 결혼을 해야겠니?
아무래도 이 결혼 힘들겠구나! 헤어지거라. 너 혼자 마음 정하면 집안이 조용하련만, 그렇지 않고 강행한다면, 아무래도 탈이 날 것만 같구나.
안 돼요 아빠! 종교가 다른 것이 헤어저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고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부모님의 종교 때문에 자식들의 장래를 막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다 큰 성인들인데, 저희들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나는 결혼할래요! 딸애의 생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방에서 딸애를 밖으로 내보내고, 조용히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 후로, 1 주일을 두고 혼자 생각했다.
딸애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딸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이 과연 아비로써 딸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의 말을 들어주어, 결혼을 허락하는 것이 딸을 사랑하는 것인가? 결혼 뒤에 생기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시집가서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고 산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딸을 생각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고 내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나의 생각대로 진행한다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핑계 삼아 자식들의 앞날을 막는 것은, 아비가 딸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의 근본정신은 사랑인데....
결혼을 시키고, 안 시키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딸을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딸애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주장만을 하는 것이다. 딸애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곧, 딸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래, 왜 사돈 되실 분이 기독교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지? 그것을 들어보는 거야!
그러려면 내가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돼. 그런 뒤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 보는 거야!
그분은 기독교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일부 기독교인의 일탈 행위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요, 나는 천주교인으로 불교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니까 나의 입장에서 내 주장만 하니까, 서로 모순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천주교 신자이기를 고집하기보다, 먼저 불교공부를 해 보리라.
나는 그날부터 교회에는 안 나가고, 대신 불교 서적을 구입하여 공부를 시작했고, 불교방송을 듣기 시작하였다.
부처란 무엇인가?
중생과 부처는 무엇이 다른가?
석가모니는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
예수의 가르침과 석가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른가?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그 후 별다른 저항 없이 지낼 수가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사돈의 연세가 나보다 한참 위라서 형님이라고 부르고, 사부인은 몸이 불편하지만 우리의 만남을 즐겁게 맞으셨다.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기독교인 외에는,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일부 사람이 싫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제사 모시기를 거부하고, 산소나 종묘 찾기를 싫어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코쓰가 어디 하나만 있겠습니까? 자기가 사는 마을을 중심으로 각 방향에서 오르는 길이 각각 다르게 시작되듯이 천주교나 불교가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은 정상을 향한 등산로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
그래요, 나 역시 딸애 덕택에 불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천주교에 대한 신앙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기독교인과의 결혼을 반대하시어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 되어 부족했던 당시의 생각이 부끄러워집니다.
이렇게 해서 두 아이들의 결혼은 많은 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며 진행되었고, 지금은 딸 아들, 둘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큰 딸은 미국에서 미술 공부를 마치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연세대학에 학적을 두고,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에 중국 딸네 집을 찾았는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있다. 마치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그래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너의 집에 웬 십자가냐? 하고 물으니, 시부모님이 오셔서, 방에 십자가를 걸으라고 허락하셨다고 한다.
내가 너희 친정 부모님을 만나고, 또 너희들의 사는 것을 보니, 괜한 나의 기우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성당에 나가도 좋다. 증표로 십자가를 걸어도 좋으니 너희들하고 싶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셨단다.
얘기를 듣는 순간 콧날이 찡했다.
사돈 형님, 감사합니다.
큰 손녀가 금년에, 스무살 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