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식 농사
누구나 자기 자식은 잘 키우고 싶어 한다. 내가 못다 한 것들을 자식이 다 이루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자식에게는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뒤돌아 보면 엉뚱한 곳에 와 있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 바로잡아야 할 적기라는 것도 느낀다.
시골에 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형제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형은 특별히 풍작을 거두지는 않지만 언제나 평년작 이상의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매년 조금씩 조금씩 가정 형편이 나아졌고, 아이들 공부도 제대로 시킬 수가 있었다.
반면 동생은 어쩌다가 한 번씩 풍작을 거두기는 해도 태반의 결실기에 벼가 넘어져 반 타작을 하기 일쑤다. 우리나라에는 벼 수확기만 되면 많은 태풍이 지나가 농민들을 울리곤 했다.
동생은 부지런하여 물관리, 비료주기, 김매기, 병충해 방지 등 부족함이 없다. 수확하기 전에 논에 가면 언제나 무럭무럭 벼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 색깔은 검푸르고 키가 훤칠하게 자라서 논에 들어서면 가슴까지 키가 오고 숨이 콱콱 찾다.
반면 형의 논에 가면 벼가 싱싱하기보다 뭔가는 모르지만 약간 부족한 듯, 벼의 색갈이 누르뎅뎅하고 훌쩍 자라지를 못해 약간 비실비실한 감이 든다. 보는 이의 마음을 꽉 채우지를 못하고 약간 부족해 보였다.
동생은 형에게 비료를 조금 더 주라고 권하지만, 형은 언제나 거절했다. 부족한 듯 키우는 것이 좋다는 형의 지론이다. 동생은 형의 게으른 듯한 행동과 악착같지 않음이 싫었다. 그렇지만 수확할 때만 되면 형은 평년작을 하는데 동생은 들쑥 날쑥이다. 평균을 내 보면 형의 2/3 도 못 되는 것 같다.
동생은 농사일이 싫어졌다. 내 마음대로 농사가 안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이농을 한다. 도회지로 나가 막노동도 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해 보지만 뜻대로 풀리지가 않아, 몇 년 견디다가 또다시 귀농하여 옛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식 농사도 벼농사와 흡사하다.
첫째는,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는 산아제한이 있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것이 국가 시책이었고, 그렇게 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8년에 결혼한 나는 딸을 연년으로 낳았다.
5촌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갔는데 딸만 둘이면 대가 끊긴다. 생가에서는 아들만 다섯, 그중에 막내로 태어난 나는, 아직까지 딸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낳으면 아들이겠지 했는데, 하나도 아닌 둘 다 딸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딸만 둘인걸 어쩌랴?
눈물을 머금꼬 셋째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는지 나름대로 연구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도 청취해 셋째를 낳았다. 꼭 아들이기를 바랐고, 또 내심 아들이라고 믿었는데, 이번에도 공주를 낳았다. 그렇게도 고추 달린 손주 하나 보기를 바라시던 할머니도, 대잇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어떻게 눈을 감으실 수가 있었는지, 양자 온 나로서는 죄를 지은 후손이 되었다.
월급쟁이로 유산도 없이,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대를 잇기 위해 입양된 것을.
손자 보기를 바라던 할머니는 안 계시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의무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하자고, 아내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넷째를 임신했다. 이번에도 딸이면 어쩔 수 없다. 안 계시는 할머님을 위한 마지막 효도다!
이렇게 하여 얻은 넷째가 막내가 되고, 외아들이 되었다. 우리는 하늘을, 아니 하늘과 땅을 다 얻은 기부였다. 농사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듯이 자식 농사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필요한 때에 비가 와주고, 비바람이 피해 가야, 열심히 일한 결과가 나타난다.
둘째, 쓴 약이 몸에 좋다.
욕심 많은 동생은 벼를 너무 자라게 하여, 태풍 때면 잘 자란 벼가 쓰러져, 결실로 이어지지 못하듯이, 우리도 그때그때마다 족함을 얻으려다가 위기가 오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좀 상황이 좋을 때에 지나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하고, 또 자식들도 그렇게 통제해 가면서 키워야 한다.
형은 우리가 보기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러한 이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는 말이 있다. 동생의 눈에 보이는, 그때그때의 만족은 그것으로 끝났지만, 형의 변함없는 철학은 풍요로 이어져, 한 가정이 안정되고 자식들의 번창으로 이어져 가는 길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즐거움이나 편리함에 빠지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자식에게 심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쓰다고 뱉고 달다고 삼키면, 몸에 좋은 약은 먹을 수가 없다. 우리는 써도, 몸에 좋으면 참고 먹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강한 바람에도 견디는 튼튼한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고리는 과감하게 끊어야 한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어야 비로소, 심은 것에서 싹이 돋고 꽃이 핀다. 내가 착한 일을 했다고 금방 좋게 변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씨앗을 심었다 하더라도, 때가 되고 조건이 맞아야 비로소 싻이 나고 꽃이 핀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수가 있는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길 들여져 시간의 함수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시간의 개념을 잊고 있다 하더라도 결과는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을 심어야만 나오는 것이지, 심지도 안은 것에서 나오거나, 착오로 다른 것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늘 무엇을 심는지도 모르고 심으면서 산다. 또 결과물을 얻으면서 살지만, 누가 뿌리고, 언제 뿌렸는지도 모르면서 산다.
내가 부모의 슬하에 있을 때는 그렇게 모르면서 살아도, 크게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고, 내가 한 행동을 책임져야 하는 때가 되면, 그에 따른 심판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아이들 넷을 두었으니, 다른 사람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딴사람에 비해 두 배로 고생해도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다. 애가 넷이니, 둘인 사람과 비교해 같은 레벨이니 성공했다고 보기보다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고 생각했다.
돌고 도는 가난이라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다시 말해 가난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가난하여서 양자를 왔고, 가난하여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애를 넷이나 낳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열악한 조건을 애들에게 물려준다면 나는 두 번 가난에 묶이는 꼴이 된다. 이 고리는 내가 반드시 끊어야 한다.
가난의 고리를 끊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지만, 지금처럼 절실하게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애가 네 명이 되고부터다. 넷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네 명이 된 덕택에, 나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말하자면 네 명의 자식은 내 인생의 임계점이었고, 임계점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내가 스스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임계점인 0도가 되어야 물이 얼듯이, 새 사람으로 바뀌는 임계점에 내가 도달한 것이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이 얼 듯이, 네 자녀를 주셨으니 내가 바뀌어야 한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네 아이들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이 아이들 덕택에 새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서, 할머님 영정에 크게 세 번 절했다.
그리고 家訓(가훈)을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정했다.
99, 88. 19, 28.
나에게 오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것이면 감사하다고 받아들이고.
안 좋은 것이면 그 뒷면을 보자. 그리고 거기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9가 오면 9를, 8이 오면 8을 받아들이고, 1이 오면 9를, 2가 오면 8을 대입하여 완전한 수 10을 만들어 내라.)
왜냐 하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나쁜 것은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그냥 좋은 것이고,
안 좋게 보이는 것은, 포장 뒤에 좋은 것을 숨기셨기 때문에 내가 못 볼뿐이다.
그 숨기신 뜻을 찾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나의 일인 것이다.
나는 이 교훈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1 년에 두 번씩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이 모임을 ‘하나로’라고 이름 지었다. 2000년도에 시작했으니 어느새 20년이 되어가는 모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