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당신이 됩니다

by 왕신 송화웅

3. 그리운 어머님

자식이 잘 되라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어머니다. 그러나 자식은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뱃속의 어린애를 낳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하나의 인간을 인간답게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자식은 모른다. 나이가 들고 모진 세월을 살다 보면 어머니의 큰 자리가 그리워지지만, 그때는 이미 떠나고 안 계시니 어머님 은혜에 대한 보답은 할 수가 없구나.


쉰세 살 중년 여인이 막내아들을 낯선 곳에 떼어 놓고 뒤돌아 선다.

남편이 유언으로 동생에게 보내라고 하여, 작은어머니 댁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떼어놓고 어머니만 홀로 돌아선다. 해가 얼마 남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봄날 오후였나 보다

아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엄마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아들은, 한 번이라도 더 엄마를 보려고 떠나는 엄마의 뒤를, 엄마가 모르게 살금살금 따라간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은 시절이 아니어서, 산 넘고 물 건너 사, 오십 리 길은 걸어 다니는 시절이었다. 늦게 출발한 엄마는 해가 질까 봐 발걸음을 재촉한다.

뒤 따르는 아들은 뛰어가서 엄마가 잡힐만한 거리가 되면 얼른 나무 뒤에 숨는다. 엄마가 안 보일 만큼 가면 얼른 따라가 또 다른 나무 뒤에 숨어,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훔쳐본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들키면, 엄마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며 아들을 혼낸다. 이렇게 몇 번인가 들켰는데 어느덧 해가 서산에 기운다.

이제는 안 된다! 할머니가 걱정을 하니까 돌아가야 돼!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그렇게 엄마와 약속을 했는데 오자마자 속을 썩이면 할머니가 얼마나 서운해하실까? 되돌아가야 한다. 엄마가 저렇게 야속하게 나를 떼어놓고 가더라도, 나는 쫓아가서 잡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로 엄마와 약속했잖아!

앞이 캄캄해진다.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들의 마지막 눈물이다.

엄마는 어느새 얼마나 갔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얼른 할머니한테 돌아가서, 다시는 엄마 생각 안 하겠다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렇게 열세 살 어린 소년은 엄마와 헤어져 사는 연습을 시작했다.

어린것을 떼어놓고 되돌아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1950년 6월 25일.

내 나이 일곱 살에 한국동란이 발발했다.

평소에도 열 명이 넘는 많은 식구였는데, 갑자기 사람이 늘어, 스무 명이 넘는 많은 식구가 되었다. 서울에 살던 둘째 형 가족이 처가 식구까지 몽땅 데리고 시골로 내려온 것이다.

우리 집은 호남평야 끝자락에 있었다

자기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이, 남의 논을 소작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우리 집에, 갑자기 대 식구가 밀려오니 밖으로는 나라 전쟁이지만, 안으로는 먹고사는 전쟁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먹을 것이 없는 우리는 모든 것을 남에게서 꾸어다가 먹고살아야 했다. 장리, 곱 장리, 반 장리, 닥치는 대로 꾸어다 목구멍에 풀 칠 하기 바빴다.

이렇게 한 해를 넘기고 나니 갚아야 할 빚이 ‘나락 20 가마’가 넘었다.

서울 식구는 모두 돌아갔지만 빚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그 후로 우리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아지기는 커녕 날로 허덕여 갔다. 왜냐하면 1 년이 지나면 20 가마의 빚이 30 가마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풍년이 들어도 겨우 먹고살까 말까 한데, 연이어 흉년이니, 살기가 날로 더 힘들어져갔다.

흉년이 들었다고 장리의 빚이 반 장리로 줄지는 않는다.

금년에 다 갚아야 하는데 흉작이니 1 년 더 상환을 유예시켜주는 것이 고작이다.

이렇게 4-5년을 견뎌낸 우리 집에서는, 이대로 가면 가정이 파산될 것 같으니까 무엇인가 단안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단안은 내려졌다.

먹는 입을 줄이는 것이다.

첫째와 셋째는 군대로, 넷째는 막노동판으로, 막내는 양자로, 큰 조카는 시계방 점원으로, 각각 뿔뿔이 흩어지면서 남은 가족이 빚을 갚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쓰라린 경험을 한 뒤에야, 집안은 조금씩 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 흩어진 가족 들은 흩어진 채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살아야 했다.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되어야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그러나 대를 위한 희생으로 끝나버리면 안 된다. 희생된 소는 반드시 위로를 받거나, 더 잘된 모습으로 합해져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희생된 본인들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남은 사람들이 뜨거운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다하여 훗날 다시 만날 때에, 서러움은 기쁨의 눈물이 되고, 고생은 값비싼 교훈이 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군 입대한 형들은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귀가를 했고, 넷째도 이어서 군 복무를 마치고 가정을 꾸몄다, 장조카는 남의 집 시곗 방, 붙박이 점원이 되어 일한 덕택에, 일류 시계 수리공이 되었고, 금 은과 시계방을 겸한 자기 점포를 내서 당당한 귀금속 사장이 되었다.

막내를 양자 보내고 몹쓸 엄마가 되어 평생 눈물을 삼키는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

잘 되면 겉 넘을까 걱정되고, 안 되면 게으름 피우고, 포기할까 봐 걱정이다.

꿈속에 죽은 남편이 보여도 막내 걱정하고,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나타나도 막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하신다.

이렇게 한 평생 막내 걱정만 하시다가 어머니는 93세에 소천하셨다.

일생을 자식들 뒷 바라지로 고생하시고도 부족한지, 성냥개비처럼 바짝 야윈 몸으로 병상을 지키시다가, 모처럼 찾아온 막내가 내민 손을 꼭 잡으시고 이제는 됐다는 듯이 미소 지으면서 흐뭇해하시던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어머님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이제는 막내 걱정 마시고 잠드소서.

당신은, 이 아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는 어머님의 마음은, 이 막내에게서 끝나지 않고 아들에서 손자로, 손자에서 증손으로 자자손손 이어져 나아갈 것입니다.

어머니는 작은 체구였지만 언제나 단호하셨다.

혼자 계신 시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고, 시 아버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셨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어 나라의 치안이 어지러웠고,

이어서 터진 6. 25 동란으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서도 열 식구가 넘는 대 가족을 건사하시며 한 가정을 정상으로 이끈다는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아들 다섯을 하나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애쓰신 어머님의 지혜와 희생은, 지금 이 나이가 돼서야 겨우 알 것 같다.

조금만 힘들어도 못살겠다고 아우성이고, 서로 좋은 것만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현실을 보면, 어머님의 모습이 자꾸만 그리워지면서 크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어머님의 희생의 덕택이요, 무한한 사랑의 결실임을 이제야 겨우 압니다. 그러니 어머님께는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덕택에 우리는 이렇게 풍요롭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살아생전 그렇게도 싫어하시던 가난을 이제야 겨우 물리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원은, 우리가 다 이루었으니 안심하시고 영민하세요. 저도 이제는 마음 놓고 어머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막내가 한 평생 그렇게도 열심히 일한 것은, 당신의 원을 풀어드리기 위함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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