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족함의 위력
부족하다는 것은 넉넉지 못하여 불편한 것이다.
그러니까 더 채워야 비로소 넉넉해지므로, 모자라는 부분을 더 메꿔 넣어야 한다.
다시 말해, “충분함 - 현재의 상태 = 부족함”이다. 부족함을 알면서 불평하지 않고, 그 부족함과 對面(대면)하고자 한다는 것은 偉大(위대) 한 일이다.
전 직장에 입사하던 신입사원 시절의 이야기다.
같이 입사한 27명 전원이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데, 강사가 일본인이다.
일본말을 잘 모르는 우리들은 통역이 없으므로 많이 답답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 일본어를 아니까 큰 불편이 없었지만, 나처럼 20대 초반의 젊은이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영어라도 할 수 있으면 물어보겠는데, 아는 영어라고는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I am a boy. You are a girl. 정도니 말을 걸기도 어렵다. 어떤 사람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여 서로 의사소통이 되어 손뼉 치고 웃기도 하는데, 어리둥절해야 하는 나는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3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본어 공부를 하여, 일본의 “야하타 제철”로 연수를 떠났던, 50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3 개월간 공부하고도 일본에 가서 연수를 했는데, 6년간이나 공부하고도 제대로 한마디 못하는 영어는 도대체 무엇이 문젠가?
앞으로는 영어의 시대가 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카투사 출신은 영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얼마나 행운아면 그렇게 되었을까? 부럽기만 하다. 일상생활 중에는 영어를 모른다고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조금 깊숙이 들어가면 반드시 영어가 나온다. 앞뒤의 문맥으로 짐작은 하지만 명확한 의미를 모를 때가 있다. 물어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물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얼버무려 넘어가야 하니, 뒤가 개운치가 않다.
일본에서 6 개월간의 연수생활과, 틈만 나면 공부했던 일본어 덕택에, 일본인을 만나면 누구라도 거침없는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정작 더 필요로 하는 영어는 깜깜이니 무슨 수로 공부를 하나? 앞으로 영어는 필수가 될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영어로 된 원서를 읽을 수 만 있다면,
영자 신문을 마음대로 읽을 수만 있다면,
영자 리포트를 마음대로 작성할 수만 있다면,
영어를 말하는 사람과 마음대로 웃으면서 떠들어 댈 수만 있다면......
인생이 확 필 것만 같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금방이라도 눈앞에 전개될 것만 같다.
이렇게 영어를 목말라하던 34 세의 젊은이에게 기회가 왔다. 동경 지사로 인사발령이 난 것이다. 인사발령을 받고는 하도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깡총깡총 뛰었다.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만 같고, 미지의 세계가 다가오는 기분이다.
일본에 가서, 꼭 영어를 배우리라.
일본어는 이 정도 하면 됐고,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영어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발령 이야기가 나오고 취임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다. 발령 즉시 중학교 2학년, 3학년 영어 교재와, 테이푸-레코다를 샀다. 그날부터 2학년 교재를 테이푸로 듣고, 40번씩 반복 읽기를 거듭하면서 문장을 깡그리 암기하기 시작했다. 3개월 남짓에 중학교 교재를 전부 암기해 버렸다. 책에 있는 영어는 전부 암기해서 연습문제 까지, 영어로 된 것은 전부, 달 달 외울 수가 있었다.
부임지는 동경 한복판, 동경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 오테마치였다. 오테마치 빌딩 9층에 연합철강 동경사무소가 있었다. 요미우리 신문사 바로 맞은편 건물였다. 소장과 일본 여직원 한 명이 전부였다.
당시의 부산공장의 냉간압연 설비가 전량 일본으로부터 구입되었으므로, 기계부품이나 예비품을 일본에서 구입해야 했다. 또한 전문 기술자도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동경사무소는 부산 공장의 정상가동을 위해서 꼭 있어야 할 곳이었다. 나는 여기서 공장이 요구하는 부품을 정확하고 싸게 구입하여, 본국으로 보내주는 일이 주 업무였다.
전임자와 인계인수도 모두 마쳤다. 이제는 한국인이,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일본어를 써야 한다. 집에서도 일본어 방송을 들어야 하고, 손님들도 일본인밖에 없으므로 일본어만 써야 한다. 그러나 일본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늘 생각하는 것은 영어다.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데...
당시에 머문 곳은 간다(神田)의 YMCA Hotel 였다. 가족이 모두 이사 올 때까지 임시로 거쳐하는 비지네스 호텔로 동경에서 제일 값싼 호텔였고, 동경에 오는 직원을 안내하는 곳 이기도 했다. 이 호텔은 역사가 100년이 넘었는데, 사업의 일환으로 YMCA English College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업무의 인계인수를 모두 마치고, 혼자서 YMCA English College를 찾았다. 야간반도 있어 입학이 수월했다. 크라스 1에서 8까지 있는데 실력에 따라서 편입이 가능했다. 듣기, 쓰기, 말하기, 이해력 등을 평가한 담당자는 크라스 3에 편입시켜 주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대학에서, 영어를 원어민들로부터 직접 배우게 된 것이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본어를 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영어로 공부를 하면서, 일본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으니, 내 팔자도 이만하면 좋은 팔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임 기간 중에 졸업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8 크라스를 마치고 졸업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정상이라면, 1 크라스를 마치는데 6개월이 걸리므로 3년만 열심히 하면 졸업이 가능할 것 같다.
선생님은 주로 미국인이거나, 영어를 쓰는 유럽인이고, 총책임자는 영국 사람이었다. 입학 후 2-3 개월이 지나 가족이 모두 동경으로 이사를 왔는데, 변두리라서 출퇴근이 힘들었다. 값싼 임대료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힘이 들어도 공부하는 그것 자체로 행복하다.
집에 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 타야 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수업을 마칠 때는 자유토론 시간이라 하여 생맥주집에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자정까지 선생님을 둘러싸고 담소하곤 했다. 언제나 막차 타기가 바쁘다.
막차를 타고 집에 오면 1 시가 넘는다. 씻고 잠든 후에 아침이면 6 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하다.
어떤 때는 학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지하철에서 잠이 들어 내릴 역에서 못 내리고 지나친다. 한참 지난 후에 깨어보면, 반대쪽이어서 다시 반대로 내려오는 지하철을 바꿔 타고 오는데, 내릴 역에서 또 못 내리고 다음 역에서 내린다. 이런 때는 택시를 타야 하는데 집에 도착하면 두시를 훨씬 넘긴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자꾸만 흘러갔다. 방학도 없이 3년을 하루같이 공부했다.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는데, 졸업시험이 상상보다 어렵다. 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힘든 것이 서양 교육 제도다. 늦은 나이에 어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때에 처음으로 알았다. 잠재의식에 남아 있지 않은 “말”들은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가 않는다. 어려서부터 듣고 말한 것은 그냥 들리고 말을 할 수 있는데, 이제 와서 새롭게 듣는 것은 몇 번 들어도 들리지가 않는다. 따라서 입에서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수 없이 반복 반복해도 헛수고다. “어학은 젊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하는가 보다.
입학 당시만 해도 20여 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졸업시험 때문에 발 버두치는 것은 오직 나 혼자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영국인 총책임자 미스타 매크니칼은 나의 사정을 잘 안다. 귀국이 임박했고 귀국하면 일본에 다시 와서 공부할 수 없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전 직원회의에 나의 졸업 문제를 회부시켰고, 다행히 졸업을 시키기로 전원 합의하여, 나는 홀로 1인 졸업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위대함은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알고 도전할 때, 인간의 위대함은 발현되는 것이다. 부족하다는 것은 필요를 느끼고, 불편을 느낀다는 것이다. 필요를 느끼고,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생활은 점점 향상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더 좋은 삶을 위한 축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