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래도 믿어주자
신성 만사(信成萬事)라는 말이 있다.
진실로 믿으면, 믿는 것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모든 일은 믿어야만 이룰 수 있지, 믿지 못하면 이룰 수가 없다. 어떤 일이라도 성공하려면 먼저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 없이 반신 반의 하면 일은 성공할 수 없다. 확실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믿으면 확실해진다. 자기의 일은 물론, 가족의 일도 마찬가지로, 믿음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 믿음을 갖기는 힘들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믿고, 남이 낳은 자식이라서 못 믿는 게 아니다. 자식 또한 내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믿고, 남이니까 못 믿는 게 아니다.
믿음은 어떤 조건에서도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는 일본으로 이사를 했다. 일본 주재 발령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인 학교로 애들을 편입시킨 것이다. 당시만 해도 재일 한국인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 대세였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취학시킬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인학교에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입학시켰다.
나는 우리 아이들도 일본 학교에서 일본인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본 사람은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일본말을 쓰는 것이고, 일본말 이외에는 쓰는 말이 없기 때문에 일본말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똑똑해서 일본말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애들도 똑같은 조건이라면 일본말을 쓰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겁 없이 일본인 학교에 애들을 입학시킨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사를 가면 처음 얼마 동안은 낯을 타듯이, 일본에서도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일본인과 우리 애들이 전혀 다를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였다.
학교에서 안전문제로 반대의견을 제시했지만 여러 번의 부탁과 담임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로 입학이 허락되어 일본 초등학교에 입학, 2년간 공부했고, 이어서 일본 중학교에 진학하여 2학년 과정까지 수료했다.
믿음대로 애들은 잘 적응해 주었다. 입학하고 일주일이 지나니까 동무들을 집에 데려오고, 3 개월이 지나니까 누가 일본인이고 누가 한국인인지 구별이 안 간다. 애들에게는 무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애가 자라서 후일 ‘88 서울 올림픽’에 초청된 당시 일본 수상의 통역을 맡았고 NHK 방송 한국 ‘리 포타’로 일하게 된다.
딸애의 이런 성장과정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 눈을 떴다. 똑같이 일본에 주재했더라도, 만약에 재일 학국인 학교에 다녔다면, 그랬더라도 통역을 하고 일본 방송국의 리포타가 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아니라고 본다.
‘나’라는 과보호의 껍질을 완전히 벗고, 새로운 몸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을 살았기에 딸애는 새롭게 일본인처럼 태어난 것이다.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쓰고 속살 내밀기를 주저하면서 나를 숨겼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어정쩡한 일본말이나 할 것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일본말을 필요에 의해 배운 것이고, 딸애는 한국인이라는 생각 없이 오직 함께하기 위해서 일본인처럼 산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일본말이 자연스럽게 익혀진 것이다.
일본에 간지 3-4개월이 되니까 딸애가 나에게 하는 얘기가 “아빠의 일본말은 일본말 비슷해 ”라고 했다. 한국인이 영어를 하면 발음이나 억양이 달라서 ‘콩그리쉬’라고 하듯이, 나의 일본어 수준은 일본인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애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화장실을 일본어로 무어라고 하는지? 숙제를 무어라고 말하는지를 모르고, 100% 나를 비워 버림으로써 화장실을 그냥 ‘토이레’, 숙제를 ‘슈꾸다이’라고, 새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화장실을 ‘토이레’라고 번역하여 ‘토이레’ 따로 있고 화장실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토이레’를 그냥 ‘토이레’라고 하는 것이다. 숙제가 ‘슈쿠다이’로 통역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슈쿠다이’라고 하는 것을 나도 그냥 ‘슈쿠다이’라고 한 것이다.
내가 부르는 이름과 그들이 부르는 이름이 같을 때 믿음이 생겨 서로 소통하지만, 내가 부르는 이름을 고집하여, 상대가 부르는 이름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소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그들을 100% 수용함으로써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자세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리드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런 태도가 절실하다고 본다.
나만을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을 믿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비록 일본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더 흡인력이 강해져, 10년 넘게 일본어를 구사했던 아빠보다 3-4 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더 잘 구사할 뿐만 아니라 완벽한 일본어 발음을 하게 된 것이다.
나를 비우고, 상대를 믿는 것은 기적을 만든다.
일본땅에 도착하여, 일본인 학교에 어린것을 입학시키려던 그때 그 마음으로, 매사를 대할 때마다 나를 비우고 상대와 하나가 된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려움을 경험시켜 애처롭고 미안한 생각은 들었지만, 또한 다른 면으로 생각해 보면 값진 경험을 자식들에게 시킨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어 있는 고정된 숙명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허허벌판을 아무런 거침없이, 주위가 하는 대로 따라 하고, 흉내 냄으로써 습관화시키고, 나아가 요지부동 하도록 스스로의 삶을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 평소의 판단과 언행으로 자식을 본받게 만드는 모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내가 믿으면 믿은 대로 이뤄지는 것이고, 못 믿으면 타인의 힘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의 어려움은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그들의 앞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의 겉모양은 보물을 보호하는 껍질과 같아서, 포장이 찢기고, 깨어져야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 “질그릇이 깨 저야 그 안의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라는 말처럼 내 안에 들어있는 나의 보배는, 나를 스스로 깨고 뛰쳐나오는, 산 경험을 통해서만 자기와 대면할 수가 있다.
겉 포장이 단단할수록 깨고 뛰쳐나오기는 힘들다.
포장을 깨고 뛰쳐나오는 이 경험을 자식이 직접 하도록,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치게 하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껍질을 깨는 것이 자식을 믿어 주는 것이요, 그 믿음을 언행으로 보여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자식들은 경험할 것이다. 그때마다 자식을 믿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어버이는 자식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들의 가슴속에 언제까지나 살아 숨 쉬는 어버이 이면서 또한 스승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