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당신이 됩니다

6. 쓸데없는 걱정

by 왕신 송화웅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지만, 매우 어려운 말이다. 독에 든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말도 있다. 평상시 같으면 쥐는 고양이 앞에서 얼씬도 못한다. 그러나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몰리면, 어차피 죽을 몸, 이판사판으로 목숨을 건다. 그래서 쥐가 고양이를 문다.

사즉생(死卽生)이요 생즉사(生卽死)라, 죽을 각오로 임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잔머리를 쓰면 망할 것이다. 책상 위에서는 상상이 안 되는 말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있는 일이요,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할 명언임에 틀림이 없다.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체면이나 명예를 생각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정면 돌파하면서 궁지를 모면하거나 해결하고자 할 때 쓰는 말이다.

반면, 상황에 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좀처럼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기 쉬운 길 만을 가다가 어영부영 시간만 허비하고, 그러다가 적기를 놓쳐버리게 된다.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원인을 조사한답시고, 남에게서 원인을 찾아 그의 탓으로 돌리거나, 몇 번 해보고 안 되면 그것마저 포기해 버리기 일 쑤다.

그러나 누가 대신해 줄 사람도 없고 자문할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해결하지 않으면 목숨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죽을힘을 다하게 되고, 그 결과로 생각지도 못했던 새 천지를 만나게 된다.

여자가 어린아이를 잉태하고 열 달 동안 불편한 생활을 하지만, 막상 해산에 임박하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맞게 된다고 한다. 진통이 잦아지고 분만 시기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고통은 더욱더 심해져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러면 죽을힘을 다할 수밖에 없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인가 넘기면,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 소진하게 되는데, 그때에서야 비로소 새 생명을 분만하게 된다고 한다.

새 생명을 보는 순간, 그 간의 고통, 죽을힘을 다해 애쓴 고생은 흔적도 없고, 나와 생명줄을 같이 하는, 새 생명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에 감사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나름대로의 ‘살아갈 능력(힘)’ 이 있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제 먹을 것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이 연약한 존재로만 보이고, 저것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제 어른이 되어 제 앞 가름을 할까? 하고 걱정을 한다.

나는 마흔셋에 직장에서 권고사직(해고)을 당했다.

그때, 큰 애는 대학 2년, 둘째는 고등학교 졸업반, 셋째는 중학교 졸업반, 막내는 초등학생였다. 퇴직금마저 친구에게 투자했다가 떼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내는 나보다 걱정을 더 많이 했다.

대학 졸업은 무슨 돈으로 시키며, 고등학생, 중학생은 어떻게 공부를 시킬 것인가?

아들 하나 있는 저 것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먹고사는 일이야 어찌한다고 하지만, 애들 교육시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앉으나 서나, 그 걱정뿐이었다.

이런 어려운 때에 일본인 친구가 찾아왔다. 몹시 반가웠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온 목적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포항 근교에 있는 모 업체와 계약이 성립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옛날 당신과의 약속도 있고 해서, 당신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싶어서 왔다고 상황을 설명한다.

고맙습니다. 언제 적 이야긴데 지금까지 기억했다가 방문해 주시다니, 더구나 외국인으로서 이렇게 찾아와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고, 한편으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가 못됩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솔직히 나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들은 그분, 가마치 씨는, 당신 사정을 다 알고 왔습니다.

지금의 당신이야말로 나의 비즈니스를 맡아 줄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자기와 함께 일을 하자고 제의한다.

자기가 부직포 롤(Non-Tex Roll)의 원자재와 제조방법을 제공할 테니, 나는 한국에서 롤(Roll)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장 가동을 하기 위한 자금의 일부도 제공할 것이니, 이 일을 꼭 맡아달라고 오히려 신신당부하면서 자리를 떴다.

얼떨결에 예, 예, 하고 승낙은 했지만,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산모가 진통을 참고 견디다가, 드디어 마지막 진통을 맞게 된 것 이라고나 할까?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마치 씨를 만났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 골목길이었다. 그냥 믿고 해 보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내 운명을 걸어보자.

그렇게 하여, 일은 시작이 되었고, 집안 식구들과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름을 ‘대한 동방’이라 했다. 포항근교에 값싼 땅을 구매하여 한국전력 동력을 인입시키고 스레트 건물을 지어 3 인이 일하는, 소규모 공장을 시작한 것이다.

부직포(不織布)란, 날줄과 씨줄 없이 섬유가 헝클어진 상태에서, 그대로 열과 압력을 가하여 천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휄트(Felt)처럼 생겼다.

부직포 롤(Non Tex Roll)은, 부직포를 엽전 모양으로 따서, 축(軸)에 끼워, 고압으로 눌러서 성형시킨 것으로, 철판에 묻은 기름이나 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 롤은 고속 설비에 사용되는 것으로, 유사품에 고무 롤라나 우레탄 롤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직포-롤을 만든 회사가 되었고, 주로 철강이나 자동차, 알루미늄, 동판을 제조하는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다.

회사가 만들어졌다고 물건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어서, 선전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속 설비에 사용되는 것이므로 한번 실수하면 피해액이 크다. 그런 것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운전자가 부담을 안고 바꾸려고 하지를 않는다. 따라서 부직포 롤의 매출은 생각 외로 미진했다. 도저히 부직포-롤로는 먹고살 수가 없었다.

‘부직포 롤’로 먹고살 수 없다고, ‘식구와 직원들’까지 죽일 수는 없었다. 회사를 차렸으니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한다."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어머님의 가르침이었다.

궁즉통이라고 했던가,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가듯’ 부직포 롤 가는 곳에, 부라쉬 롤도 함께 쓴다.

그래서 ‘부라쉬 롤’에 손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세라믹 롤’에 까지 손이 미쳐, 다품종을 생산하는 ‘롤라 전문 회사’로 변신하게 되었다. 아내와 조카와 서이서 하던 회사가,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점점 커져, 지금은 100명에 가까운 회사로 변모하게 되었다.

철강업체, 자동차, 알루미늄, 동판 업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업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EU, 등 전 세계에 수출하는 글로벌 회사로 변모해 가고 있다.

자식들도, 지금은 당당하게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어렸을 적 일본에서, 이방인처럼 힘들어했던 체험과, 귀국 후에 극복한 여러 경험들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큰 힘이 된다.

생존경쟁의 싸움을 보고 자란 자식들은, 보고 들은 그대로를 연출하며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간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헛것이란 없다. 모든 것이 오늘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런데 괜스레 쓸데없는 헛 적정만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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