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함께 웃고 울었던 친구
1. 싸우고, 돌아서고, 화해하고
세상만사가 만나면 싸우고, 싸우면 토라져서 돌아가고, 돌아갔다가 다시 화해하는, 그런 사이클을 하면서 성장한다. 형제자매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게 함께 웃고 울면서, 이웃을 알고 자기를 알아 세상에 적응하고 자기 자신을 설득해 가면서 살아간다.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의 품 안을 동생에게 빼앗겨 서러운 마음이 들고, 그래서 동생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해코지도 하고, 동생을 못살게 하면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심술을 부린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기도 하고, 아빠에게 호소를 해 보지만 어쩐지 통하지 않아, 결국은 아빠마저도 자기편이 아님을 알게 되어 토라져 울 고불 고를 계속한다.
철이 조금씩 들어가고, 이렇게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음을 알면서부터, 동생을 인정하게 되고 오히려 귀여워해 줌으로써 부모님의 사랑을 회복해 간다.
이렇게 동생을 사랑하게 되니, 동생은 형을 따르게 되고, 부모님의 믿음까지 얻게 되면서 가정에 질서가 잡혀가고, 웃음꽃이 피게 된다.
교우관계도 그렇다. 처음에는 나만 생각하고 고집을 피우다가 고집이 통하지 않으면 싸우고, 싸우다가 토라지고, 토라졌다가는 다시 화해하는, 그렇게 하면서 정이 붙고 상대가 필요함을 느끼면서 성장해 간다.
직업이나 종교가 뿌리를 내리는데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천주교가 들어와 자리를 잡기까지도 그랬다.
할아버지는 유학자셨고, 집안에서 20-30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서당 훈장이셨다. 천자문을 공부하는 학생부터, 소학, 대학을 공부하는 여러 계층의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명심보감을 배웠는데 너무 일찍 시작하여 쓰는 공부보다 언제나 읽는 공부였다. 언제나 처음부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늘 처음만 읽는 그런 느낌였다.
마을 전체가 성당에 다니는 관계로 일요일이면 애들이 성당엘 가기 때문에 집집마다 텅텅 비여, 친구고 어른이고 간에 사람이 안 보였다.
그래서 일요일만 되면 나도 따라서 성당엘 가곤 했다.
더욱이 성당엘 가면 먹을 것도 준다.
6.25 직후였기 때문에 교회에 가면 많은 구호물자가 있었다.
커다란 분유통이 있었고, 헌 옷, 헌 구두, 이름 모를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았다.
설날이 되면, 동내 애들이 모두 나와서, 설빔을 뽐내거나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우리 집은, 늘 제사를 지내느라고 애들과 함께 놀 수가 없어, 어린 나의 애를 태우곤 했다.
설날이면 그렇지 않아도 추운데, 문을 다 열어놓고 제사를 지내니까 오들 오들 떠는 것이 싫었다. 추석이면 새로 사 온 운동화며, 먹을 것들을 들고 나와 뽐내고 있는데 우리는 제사를 여러 번 지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려 언제나 배가 고팠다.
성당에 다니면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제삿날이 되면 가족끼리 모여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기도라고 해 봐야 정해진 기도문을 여럿이 같이 읽고,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위해 잠시 묵상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나는 성당에 다니고 싶어 졌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간편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성당에 가면 구호물자도 탈 수 있고, 주일 학교에 다니면 노트나 연필 같은 학용품도 탈 수가 있어 가난했던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이 관습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것이다. 무슨 면목으로 죽어서 조상님들을 보느냐고 꾸중하신다.
동내의 박창온이라는 회장님은 자주 우리 집에 오셔서 할아버지를 상대로 전교를 하셨다.
처음에는 발길도 허락하지 않았으나, 손자가 자꾸 교회에 나가고, 며느리가 교회에 가는 것을 아시고는, 할아버지도 스스로 늙어 약해지셨는지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하셨다.
이 세상에서 고생하다가 죽으면 영혼이 천당이나 지옥엘 가게 되는데, 성당엘 다니면 예수님의 보혈로 은사를 입어 천당에 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렇게 어른들은 회장님의 전교에 의해서, 어린 나는 주일학교의 상품이나 배급품에 이끌려 어느새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천주교 신자가 되면 자기와 관계하는 모든 이들을 전교해야 한다.
따라서 입양되었던 양가도 모두 입교하여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결혼 상대도 예수교에 다녔는데 천주교에 입교시켜 혼배성사를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이후로 낳는 애들은 모태 신앙인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 사람을 천주교회에 입교시킨 전도자가 된 셈이다.
아들 딸을 낳아 키울 때 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애들이 커서 결혼을 하게 되니 문제가 생긴다. 당사자는 서로 좋아하니까 신앙을 바꿔서까지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의 부모들 역시 저항 없이 허락한다는 보증은 없다.
첫째애는 양가가 천주교 신자여서 아무런 저항 없이 결혼을 했지만, 둘째의 결혼은 쉽지가 않았다. 상대측 부모님께서 결혼상대로 가톨릭이나 크리스천은 안 된다니 어찌하랴!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나에게 동생이 생겨 앞이 캄캄해진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고집을 펴 봐도 상대는 꿈쩍하지 않는, 절벽 같은 요지부동의 상황이라고나 할까?
사위 될 사내와 딸애는 결혼을 강행하자고 하지만, 사회를 아는 나 로서는 무리하게 강행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을 고심, 또 고심했다.
새로 생긴 동생처럼, 엄마 아빠를 모두 등에 업은 강적을 만나면, 내가 포기할 수밖에, 방법이 없다. 엄마의 젖도, 엄마의 옆자리도, 엄마의 사랑도, 모두 동생에게 양보해야, 내가 사는 것이다. 아빠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얄팍한 수단도 동생에게는 안 통한다. 내가 100% 양보하는 외길 만이 오직 내가 사는 길이다.
‘져야 이길 수 있다’는 지혜를 하느님은 어린 형에게 준 것이다.
“동서(東西)의 피안(彼岸)” (吳經熊 著 金益鎭 譯)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涵蓋乾坤 함개건곤
截斷衆流 절단 중류
隨波逐浪 수파축랑
하늘과 땅이 흠뻑 젖도록, 충분히 파악하고
줄기가 아닌 지엽적인 것을, 과감히 잘라내면
파도에 물결 따르듯, 저절로 따라온다.
무엇인가가 나의 것으로 바뀌는 데에는 큰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저항은 나를 괴롭히기 위한 저항이라기보다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분의 배려임을 알아야 한다. 동생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것도 그러하며, 종교문제, 직업 또는 배우자를 결정하는 모든 문제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거 거거 중 지요, 행 행행 중 각, (去去去中 知요, 行行行中 覺)이다.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앎이 오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중에 깨우침이 온다.
싸우고 톨아저 돌아서고,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는 우리들의 생활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거기서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도 있고 스스로의 갈 길을 찾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