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다는 것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모든 것들의 덕택으로 내가 살려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편한 생활을 할 때는, 사는 것이 무엇인지 굳이 알 필요조차 없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참꼬 견디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워지니까. 나쁘면 나쁘다고 투덜대다가 퇴근 후, 소주 한잔 하면서 풀어버리면 된다. 그러나 직장을 잃어버리면, 형편이 달라진다.
언젠가 3 개월간 출근이 정지되어 집에서 논 적이 있다. 물론 3 개월 뒤에라도 복직된다는 계약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3 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해직이 되니,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간였다.
3 개월 동안에 생각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부족하면 아내의 힘을 빌려서라도 애들이 공부를 마치고 자립할 때까지의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내가 뛰려면 기동력이 있어야 한다. 먼저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자. 수영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장에 등록하여,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에 합격, 자동차 2급 면허를 땄다. 내친김에 도로 연수까지 받아 기동력은 아쉬운 대로 금방 해결되었다.
퇴직금을 어딘가에 투자하고, 아직까지 직장 경험에서 얻었던 지식과 기능을 총동원하여,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생각대로 된다면 세상 살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했는데 갈 곳이 없겠나! 어떻게 되든 한번 해보는 거야!
마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가 자기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데, 거기에 가서 한 번 일을 해 보는 거다.
일이 술술 풀리는 듯했다. 퇴직금 일부를 친구에게 투자하고 희망에 부푼 새 출발을 했다. 신규 아이템을 시작하기로 업무분장도 만들고, 여기저기 시장조사도 하며 나름대로 부지런히 일을 했다.
함정은 전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타났다. 친구가 어음을 쓰는데 진성어음 (물건 대금을 갚기 위해 작성한 어음)만 발행하는 것이 아니고 융통어음 (실제의 상거래 없이 단순한 자금의 융통을 위해 발행하는 어음)까지 발행하는 악성 채무 자였었는데,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이 사실을 안 것은 약속된 투자뿐만 아니라 그 외에 추가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준 뒤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용금을 조금씩 회수하니까 친구는 부도를 내버렸다. 내 배 째라는 식이다. 전 직장에서 크게 상처를 받고 퇴사했으니까, 보란 듯이 여기서 새 출발을 하려고 했는데 부도를 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왜 나는 이렇게도 운이 없을까? 친구가 정말 원망스럽기만 했다.
친구가 부도를 냈으나, 내가 맡던 프로젝트는 내가 맡아서 새 회사를 만들기로 하고 가까운 친구, 친지 중에서 주주들을 새로 모았다. 자본금 5000 만원으로 포항 입구, 농촌마을에 공장터를 잡았다. 회사를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악재(惡材)가 터진다. 믿은 사람이 배반하고, 전 직장 노사문제로 검찰청에 불려 다니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동력으로 쓸 전기도, 냉각수로 쓸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 입구에 스레트 공장 하나 마련하려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건축계약을 할 때는 금방 지어줄 듯하더니, 착공하고 나니까 공기를 안 맞춘다. 완공하는데 얼마나 애를 먹이는지 모른다. 독촉을 하려고 해도 사장이 만나 주지를 않는다. 시공사를 찾아가, 건물에다 오물통을 들이대고서야 만날 수 있어, 겨우 잔공사를 마무리했다.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는 시골이라서 用水(용수)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마침 마을 뒤쪽에 폐기된 우물이 하나 있어 깨끗이 품어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썩은 물을 품어내려고 장비를 대니,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왜 말도 없이 마을 우물을 쓰느냐고 입을 댄다.
일일이 응대하며 소주라도 한 잔 해야 조용해지지, 그냥 넘어 가지를 안는다.
한전 전기를 끌어오는데도 쉽지가 않다. 전주 8개를 자비로 부담하는데도 내 맘대로 안 된다. 전기를 끌어오는데 인입 예정일로부터 15일이나 늦어져, 어쩔 수 없이 발전기를 빌어 자가발전 해 가면서 시운전을 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전 직장 노사문제로 검찰청에 호출이 되었다. 전 직장 노조 측에서 6명, 회사 측에서 2 명, 8 명이 부산 구덕 유치장에 구속 수감되었다. 나 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백방으로 뛰어도 회사일이 안 풀리는데, 구속까지 되었으니 우리 회사는 꼼짝없이 망하게 되었다.
구치소에 들어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회사 일은 물론이고, 내 몸뚱이 목욕도, 이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삼시 세끼 식구통(食口桶)으로 주는 밥을 먹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게 살아있는 것인가!?
할 일이 없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여기에 와 있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여기, 구치소에까지 들어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사는 목적도, 살아야 하는 이유도, 알 수가 없다.
아직까지는 내 능력으로 산다고 믿었고, 그래서 능력을 키우려고 온갖 애를 다 써 왔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내 힘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방에서 잠깐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나갈 수가 없다. 책을 한 권 보고 싶어도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면회 오는 아내에게 부탁하여 아내가 도와주어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가 있다.
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다. 꼼짝없이 죽은 것이다.
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는 물론이고, 삼 개월 출근정지 기간에라도, 아니면 새 회사를 만들고라도, 나는 내 힘으로는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한 번도 그런 것은 생각지 못하고 제 잘난 맛으로만 살았었다. 아마도 지금 이 시간은,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한 하늘의 배려 인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서도 네가 사는 이유를 못 찾는다면, 너는 어쩔 수 없이 버려지고 말 것이다.
“3개월 출근정지 기간에도 너는 네 힘으로만 살려고 했지, 내 뜻에 맞는 삶을 살려고 하지 않았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새 출발’을 한다고는 했지만 너는 너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고 옛날이나 똑같은 짓을 했어, 그리고 너의 억울함만 호소하면서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삶만을 살았어. 어디 그것뿐이냐?”
“마을 사람들도 겉으로는 가까운 척 다정한 척하면서도 네 마음에 안 들면 미워하고, 무시하고, 마음속에서는 이웃이 아니라 원수였잖아?”
“사업하면 기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을 네 바로 옆에 보내 주었지 않아? 학원이 옆에 없었으면, 네가 어떻게 운전을 해!
네 친구를 보내어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고, 빚지면 어찌 되는지 알려 줬잖아!
너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산 모델을 너에게 보냈건만, 너는 볼 줄을 모르고 원망만 했지!
어디 그것뿐이냐!
“값싼 시골 땅을 알려줘서 네가 거기에 자리 잡았지, 포항시에는 네 형편에 엄두나 낼 수 있었겠어? 네 형편에 딱 맞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건만 언제나 너는 불만였지, 감사할 줄을 몰랐어!” “지금 여기도 마찬가지야, 어쩔 수 없도록 가둬놓으니 네가 이런 생각이라도 하지,
풀어놓았으면 네 이웃이나, 너를 도와준 사람들을 네가 생각이나 하겠어?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생각해봐라.
그래도 네가 잘났고, 이웃은 나쁜지!”
나는 무릎을 굻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두 손을 들었다.
“하느님, 제가 잘 못 했습니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나 만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화를 푸소서. 당신 뜻대로 살겠습니다”
나는 바뀌기로 결심했다. 내가 사는 게 아니고, 내 속의 하느님이 살아야 한다. 나와 참나가, 하나가 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구치소에 온 이유임을, 확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내 뜻대로 살지 않고, 당신 뜻대로 살겠습니다.”
나에게 싫은 일이 오는 것은, 하느님이 나를 미워해서 하시는, 벌함이 아니고,
이 일을 통해 내가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하느님의 따스한 은총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구치소를 통하여 이를 알게 해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올렸다.
당신을 통하여, 당신과 함께, 당신의 안에서, 영원히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