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나다
3. 스트레스란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작용되고 있다. A 가 B에게 힘을 가하면, B 도 A에게 받은 만큼의 힘이 작용한다. 이는 우리가 자연계에 살고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A 나 B 가 무생물이라면 그 작용과 반작용을 모르겠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이 A와 B 라면, 그 작용하는 힘과 반대로 작용하는 힘은 벗어날 수가 없다.
인간은 작용에 의한 물리적인 반작용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반작용 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양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미미 하거나, 오히려 재미로 느낄 수 있을 정도라면 모르지만, 신체에 위험을 가하거나 명예나 자존심을 상하도록 느끼게 되면, 우리는 이를 ‘스트레스’라고 불러 특별관리를 하게 된다.
A의 견딜 수 있는 힘(耐力)이 10이라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1, 2, 3, 4, 5 정도까지의 힘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겠지만, 9 나 10 정도의 힘이 작용한다면, 크게 위협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B의 견디는 힘은 3 밖에 안 된다면, A 가 장난으로 가한 1 또는 2 밖에 안 되는 힘이라 해도, B는 위협을 느끼며, 많은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이 외부로부터 받는 일정한 힘에도 나의 내력의 크기에 따라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외부의 문제도 있지만, 나의 견디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무서워하거나 피하려 하기보다, 일단 직면(直面)하면서 나의 내력(耐力)을 키워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가 자연계에 살아야 한다면, 외부로부터 힘을 안 받고 살아갈 수는 없다. 계절이 바뀌어 기온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밤과 낮이 바뀌어 명암의 차이가 어쩔 수 없게 된다. 또한 외국에 가면 언어가 바뀌고, 직장에 가면 직장문화가 가정과는 다르게 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노인과 젊은이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 차이가 항상 작용하는 지구촌에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지구촌이 내뿜는 최소의 힘에는 언제나 견딜 수 있는, 내력을 길러 둬야 할 것이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모두를 견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육체적으로 다 성장한 성인(成人)에게 하는 말이다.
이렇게 스트레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니까, 스트레스는 나에게만 작용하는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하도록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고마운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고 안 받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을 길러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성장한다. 육체적인 성장은 눈으로 볼 수가 있으니까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성장하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외부로부터 나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성장통"이, 곧 스트레스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적인 성장도 같은 표현을 할 수 있다.
나에게 경제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조성되면, 그 튼튼한 기반 위에 경제적인 것들이 쌓이면서 경제적인 부(富)를 쌓는다. 그러나 그 기반이 단단하지 못하면, 일시적인 부는 쌓일지 모르지만, 금방 새어 나가거나, 빼앗겨, 다시 빈 털터리가 되고 만다.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월급을 타던 날, 부장이 현장을 둘러보다가, 내가 근무하던 현장 사무실에 들렸다. '젊어서 경제적인 관념을 확실히 해야지, 안 그러면 늙어서 고생한다'면서 계(契)를 붓자고 한다. 자기가 계주를 하면 1번과 끝 번을 하니까 여러분은 그 사이의 번호를 하나씩 들어, 조금씩 월급날 부으면, 자기 곗날에 목돈을 탄다면서, 들기를 권유한다.
당시 나의 월급은 3 만원 정도였다. 매월 1 만원씩 20 개월을 부으면 20 만원의 목돈을 타게 된다. 나는 10번을 들기로 하고 매월 월급날이면 월급에서 1 만원씩, 꼬박꼬박 곗돈을 부었다. 10 번째 붓던 날, 그날 나는 20 만원의 목돈을 손에 쥐게 되는 날이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한쪽으로 나를 부른다.
평소에 다정하게 대해 주시고, 객지에서 힘들겠다면서 자주 위로도 해주시던 아주머니다.
“오늘 곗돈 탄다면서, 어디 쓸데 있어?”
아뇨, 급히 쓸데는 없는데요, 왜 그러세요?
“급히 돈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월 4,000 원씩 이자를 줄 테니 6개월만 빌려달라” 고 한다.
나는 매월 4,000원씩 이자를 준다는 말에 마음이 혹했다.
그렇지 않아도 곗돈을 타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 중이었는데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반년만 빌려 달라고 하니 귀가 번쩍 띄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회사 사장의 친척으로 붙박이 식당 주인인데, 얼싸 좋다고 돈을 빌려 준다고 했다. 6 개월이면 2만 4천 원, 한 달 월급에 버금 하는 돈이 생기는 것 아닌가! 원금과 합하면 22만 4천 원의 거금이 되니 결혼자금으로 잘 쓰겠구나 싶어서, 혼자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 했다. 그리고 곗돈은 타서곧바로 건네주었다. 차용증도, 영수증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믿고 주었다.
첫 달 이자로 4,000. 원을 받았다.
꿔줘서 고맙다면서 계란 후라이까지 하나 더 밥에 올려 준다. 요긴하게 잘 쓰도록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두 번 세 번 인사를 했다.
두 번째 이자는 며칠 늦게 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면서 4,000. 원을 받았다.
셋째 달부터는 왜 이자를 안 주냐고 독촉을 해도 미안하다고 만 하면서 죽는시늉을 한다.
군대 갔던 아들이 돌아와 식당일을 해도, 미안하다고만 하면서 이자와 본전의 상환은 모르쇠다. 나의 결혼자금으로 쓰려던 돈이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저버렸다.
생각만 하면 속 상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20 만원이면 얼마나 큰돈인데, 병신같이 떼이고, 큰 소리도 한번 못 쳐보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하소연 한 번 못하고, 속만 태우는, 그런 내가 한없이 미웠다.
예전부터 돈놀이는 하지 말라고 했다. 돈놀이는 수전노가 하는 짓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자 몇 푼에 눈이 어두워 혹하고 말았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차라리 이자 없이 몇 개월 꿔 줬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이 일이 있고 난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잊히지가 않는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업(業)이라는 생각였다.
내가 돈을 떼인 것은 내가 떼여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떼인 것이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떼여야 할 이유는 내가 알 수도 있겠지만, 모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내가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나의 숙제가 되었다.
숙제 1:
나에게 경제적 관념을 심어주기 위한 보이지 않는 힘의 배려일 수도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 공짜 바라지 말라, 너의 공짜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 공짜 바라지 말라. 공짜 바라면 그 보다 더 큰돈이 날아갈 것이다, 라는 경고로, 인생의 값진 교훈이다.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아도, 정말이지 큰 교훈을 얻은 것이다. 이 사건은 공짜 바라는 내 마음을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숙제 2:
가까운 사람과는 돈거래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하고 돈거래를 한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것도 좋지만 회수하는 조건도 생각해야 하는데 회수하는 조건은 전혀 고려하지 못한, 어린애 같은 경제관이었다. 회수하는 조건이 완전하지 못하면, No,라고 거절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후일(後日)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데, 수업료로 20만 원을 지불한 셈이다.
숙제 3: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음이다. 스트레스를 감사하다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뜻을 보고, 하느님의 뜻대로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나쁜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미움에서 우러나는 자비를, 그리고 지혜를 발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적으로 보지 말고, 친구로 삼아 거기서 배워야 한다. (넘어졌으면, 넘어진 그 자리를 짚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인생은, 일어난 일들에 의해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일어난 그 일들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로 나타난다. 더 나아지기도 하고, 또는 더 나빠지기도 하는, 그런 나의 운명이 거기서 결정된다.”
스트레스를 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풀어야 하는 나의 과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