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나다
5. 문인화 입문
70세가 되던 2014년, 나는 문인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붓 한번 잡아보지 않던 사람이 문인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당사자인 나도 놀랬다. 왜 문인화를 시작했는가? 그 원인은 나도 잘 모른다. 그냥 그렇게 됐다. 굳이 원인이라면 아들이 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하지 않으려고, 숨은 것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비켜줄 수만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지 상관이 없었다.
처음에는 수필을 쓰고 싶어서 이곳저곳 기웃거렸는데, 이미 모집기간이 지나서,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문 글씨를 써보려고 서예반을 찾았다. 찾은 곳은 포항 입구에 있는 위덕 대학교 평생교육원이었다. 학교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택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붓글씨를 써 보고 싶습니다’ 하고 선생님에게 말했는데, ‘붓글씨보다 문인화를 하세요’ 하면서 뜻 밖에 문인화를 권한다. 문인화를 그리면 화제를 쓸 때에 붓글씨를 써야 하니까, 자동적으로 문인화도 배우고 붓글씨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한다.
75-6세 정도로 보이는, 흰머리에 고무신을 신은 촌노(村老) 같은 선생님이셨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간.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간 공부를 한다. 선 긋기부터 기초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서예반 학생이 모두 30명쯤 되었는데 나는 세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선생님과 동갑내기로, 안강읍에서 건강식품점을 운영한다고 한다. 한문 글씨도 잘 쓰지만 한약재를 많이 취급해서 한문에 대한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그다음으로 나이 드신 분은 방장이라고도 하는 여자분인데 선생님보다는 한 두 살 밑으로 보인다. 이 분야에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멋쟁이 할머니다. 문인화를 하다가 지금은 한문 서예를 한다고 한다.
여자 총무님은 나보다 2-3년 연하로 보이는 문인화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각종 대회에서 대상, 우수상 등 많은 수상경력을 가진 분으로 선생님이 안 계시면 대신 가르쳐 주기도 하는 서예반 반장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경력이 있는, 인테리 총무님이다.
남자가 반, 여자가 반으로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하면서 노후를 즐기는 학생들인데 나이가 젊은 40대 도 보인다.
학생들은 매년, 대회에 출품을 하는데 작품을 접수하는 곳이 꽤 많다. 경주 포항 지구만 해도, 포항시 전, 영일만전, 신라 미술대전, 고운 휘호전, 양동 국제서예 전, 등이 있고 대구에 죽농 전, 경북도전, 등이 매년 우리들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문인화를 배우면서 점차 문인화에 빠져 들어갔다. 문인화를 그리는 그 정신이 점차 나를 잡아당긴다. 옛날 문인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종이 위에 붓으로 표현을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실대로 사진처럼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대상의 기백이나 특성을 붓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 기상이 조금씩 나의 그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인화 하면 4 군자를 든다. 매난국죽(梅蘭菊竹),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를 말한다. 그중에서도 매화와 대나무가 나의 주목을 끈다.
겨우내 참꼬 견디다가 봄을 재촉하는 설중매(雪中梅). 연약하지만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돋아나는 새 싻. 추우면 추울수록 더 꾿꾿함을 나타내는, 그러면서도 코를 찌르는 짙은 매화의 향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인고의 정신이요, 지조가 아니겠는가?
속은 비어 있지만, 단단한 매듭을 가지고 있는 대나무.
속이 비어 있음은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요, 매듭이 있음은 유혹을 끊으라는 가르침이다. 마음을 비우고 유혹을 물리침은 만백성에게 똑같이 필요로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관리층이나 지도층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덕목이 이것 아닌가? 그래서 옛 선비들은 죽매(竹梅)를 그렇게도 찬양했나 보다.
나이 70을 넘기면서 아들이 하는 일을 간섭하게 되면, 하는 일에나 아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문인화를 핑계로 도망을 나왔는데, 오히려 이런 가르침을 주면서 포근히 나를 감싸주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문인화는 또 다른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문인화를 그리려면 먼저 선생님에게서 체본(體本)을 받는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체본대로 따라서 그린다. 내가 처음 받은 체본은 난초였다. 일반적인 난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는데, 왼쪽으로 향한 난초를 주시면서 그리라고 했다. 일 년을 꼬박 난초만 그렸다. 전지(70cm X 135cm)로 300장은 넉넉히 그렸을 것이다. 처음 그린 난초를 다시 보면, 그림은 잘 그려져 있는데 플라스틱 판때기를 오려 붙인 것 같다. 먹의 농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부드럽지가 못하고 딱딱하다. 그렇다고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원군의 난초는 문인화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붓을 들어본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유명한 대원군도 평생 동안 난을 쳤다고 한다. 나는 이제 그 난초 그림의 입구에 와 있을 뿐인데, 서두를 필요가 어디 있겠나?
이어서 소나무의 체본을 받았다. 한참 그리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겨 서예반이 폐반 되고 말았다. 일 년 넘어 공부하면서 정이 들었는데 폐반이 되고 나니 몹시 서운했다. 사람이라는 것이 참말로 요상한 동물이다. 이곳에 올 때 만 해도 낯설어서 서먹서먹했는데 어느새 서운한 사이가 되었다. 참으로 모를 것이 ‘나’라는 존재다. 학생 하나가 선생님의 비리라면서 학교와 교육부에 투서를 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학교는 교육부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다. 학교 측은 이를 계기로 서예반의 뿌리를 잘라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익은 없고, 귀찮기만 한 서예반 운영을 이 사건을 핑계로 중단해 버린 것이다.
졸지에 공부할 터전을 잃어버린 학생들은 학교 측에 수 차례 연명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배울 곳을 잃은 학생들은 이곳저곳 헤매다가 전세방 하나를 겨우 얻어, 선생도 없이 학생들끼리 서예반을 운영해 가고 있다. 선생님도 없이, 가진 돈도 없이 쫓겨난 30여 명은 그래도 그려 보겠다고 먹을 갈고 종이를 펼쳤다. 총무님이 체본을 만들고 3년간 무상 보시하기로 하고, 전세 보증금은 내가 선불 대납하여 학생들이 차후 조금씩 분할 상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위덕대학교 서예반보다 더 경제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배움터가 생겨버렸다.
벌써 5년 넘게, 옆도 보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70을 넘기고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걱정은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처럼 쉽게 손에 익숙하거나, 빠른 진척은 안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를 느끼면서 젊은이들과 보조를 맞춰 가고 있다.
2016 년에는 포항시 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아 젊은이들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고, 다음 해에는 고운 휘호전에서 우수상을 받아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나 어설프지만, 조금만 지나면 모든 것이 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나’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백지처럼 대기하고 있다. 여기에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기만 하면 그냥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 밖에 못 해. 하고 미리 선(線)을 그으면,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정된 선을 긋지 않는 마음을, 우리는 ‘열린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런 열린 마음이면 나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고 나는 믿는다.
제지회사에서 근무하던 말단 직원이, 철강회사에서 열처리하는 철강 기술자가 되었고, 그 기술자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인으로 바뀌더니, 이번에는 문인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고, 그 화가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제지원(製紙員)과 철강(鐵鋼) 기술자가 하나요, 그가 경영인(經營人)도 되고 화가(畫家)도 되어 살지만, 또다시 작가(作家)가 되는 꿈을 펼치겠다고 발버둥 치는, 그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같은 한 사람이다. 아직까지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그 나를 위해 지도해 주고, 내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들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이는, 내가 그로부터 배우려 하면 그는 나의 스승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우려 하면 스승이 되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남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남남으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 하나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