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나다
6. 상생 서원
상생 서원은 붓글씨를 쓰고, 문인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2015년 2월까지 위덕대학교 부속, 평생교육원 서예반에서, 공부하던 학생 30여 명이, 그해 6월 30일 학교의 갑작스러운 폐반 조치로 갈 곳을 잃었다. 학생들은 이곳저곳 헤매다가 강동 면사무소 앞 허름한 건물 한 칸을 빌어, 7월 9일 총회를 열고 개원하면서 이름을 상생 서원(相生書院)이라 했다.
相生(상생)은 서로의 기(氣)를 살려주자는 의미로 부친 이름이다. 그러니까 상생 서원이란, 서로의 기(氣)를 살려 줘 가면서 붓글씨도 쓰고, 문인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학생과 선생은 물론이고 학생과 학생 간에도 서로의 기를 북돋아 주자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학생 중에서 30년을 넘는 문인화의 경력을 가진 서예반 총무님이 3년간 무보수(無報酬)로 지도해 주겠다고 나서서,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총무님의 무료봉사를 고맙게 생각하고 원장(院長)으로 초대했다. 雪芝(설지) 趙 賢玉(조 현옥) 님이, 그분이시다. 총회에서 나는 회장(會長)으로 선출되었고, 총무와 재무, 감사를 새로 선임하여 자율(自律) 체제(體制)를 갖추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정했다.
상생인의 길 :
우리는 서예(書藝)를 통한 자아완성(自我完成)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안락하고 행복한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서로 노력하며, 더 나은 실력을 쌓기 위해 정진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서로 만나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서로의 삶에 도움을 주는 일원이 되고자, 나 스스로 노력하는 것은 물론, 상대를 배려하고, 정진을 위한 동반자로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원생(院生)이 될 것을, 다짐한다.
1. 마음의 상생 :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그리고 어제도 좋고 오늘도 좋아야 하는, 그런 멋쟁이 마음을 우리는 지향(指向)한다. 나는 언제나 나의 주위에 기(氣)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되겠다.
2. 관계의 상생 : 우리는 상대의 약점보다, 좋은 점을 찾아내는 관계지향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다름(異)의 지혜를 발출(拔出)하는 상승인이 되도록 노력한다.
3. 언어의 상생: 우리는 좋은 말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나의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며, 즐거움이 되기를 원한다. 언어가 훌륭한 상생의 도구가 되도록 노력한다.
위덕대에서 나올 때는 30명이던 학생이 20명으로 줄었지만 원장을 중심으로, 언제든지 나와서 공부하고 놀면서 우애를 다지고 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초지종을 더듬어 본다.
2015. 2월 4일.
수업료를 35% 인상하고,
(수요일 반과 목요일 반 중) 수요일 반을 해산(解散)한다.
라고 H 선생님이 발표를 했다.
당시에 학생들은 월 50,000. 원씩 수업료를 위덕대학에 납부하고, 수요일과 목요일 양일간 붓글씨 쓰기와 문인화 그리기 공부를 했다. 간식과 음료수 등은 돌아가면서 자비(自費)로 학생들이 부담을 하고, 명절이나 스승의 날에는 얼마씩 돈을 갹출하여 선생님에게 예(禮)를 갖췄다.
서예반 운영은, 학교에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이라, 담당 선생님의 보수는 적고, 보수에 비해 가르치는 시간은 길어서, 수업료 인상과 수업시간 단축을 위한, 수요일 반 폐지의 발표는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 측이나 선생님으로서는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학생들의 불만도 있었다. 한 학생이 서예반 운영에 비리(非理)가 있다고, 학교와 교육부 당국에 투서(投書)를 했다. 사건은 누가 수습도 제대로 못하는 짧은 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버렸다. 담당 선생님은 20여 일간 고민을 하다가 끝내 사표를 냈다.
선생님은 2월 25일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학생들에게 호소했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학생들은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는 학교의 짐이 되어버렸다. 교육부로부터 조사를 받아야 했던 학교 측의 사정도 있었겠지만 서예반 자체가 학교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예반에는 학생 각자가 쓰는 비품들이 많다. 특수 제작된 대형 습작용 테이블, 붓, 벼루, 물통, 물감, 화선지, 체본, 체본 걸이 등,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이다. 일일이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학교에 놓고 다닌다. 그렇다 보니 목요일에 만 수업이 있다고 해서, 수업이 없는 다른 날도, 다른 학생들이 (이 비품들 때문에) 교실을 이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서예반의 운영은 다른 반에 비해 교실의 순환 이용이 안 되므로, 학교 측으로 봐서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이런 때에 교육부로부터 지적을 받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반을 폐 반하는 것은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 죄 없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학교 측에서 모집했으므로, 와서 공부하는 죄밖에 없는데, 학교 사정이 안 좋다고 무조건 학생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학교 측에서 버림받고, 담당 선생님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오 갈 데가 없어 애타고 있다.
학생들은 번갈아 가면서 학교 측에 “서예반 존속을” 간절하게 요청했지만 답변은 “폐반”. 그것뿐이었다.
이럴 바에는 "나가서 동아리를 만들자는 안(案)이” 학생들로부터 나왔다. 모두가 반기는 안 이었다.
학생들은 값싼 전세나 월세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지만 좀처럼 그런 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안강읍, 강동면사무소 주위를 이 잡듯이 뒤졌다. 10여 일을 찾아다니다가 간신히 찾은 곳이 지금의 장소다. 그러나 이곳은 너무 좁아서 서로 비킬 틈도 없었지만, 다행히 6개월 후에 옆방이 나온다고 해서, 무리하게 참꼬 기다렸다가 벽을 털어 내고서야 아쉬운 대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방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습작용 테이블은 학생들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4 피트 X 8 피트 합판은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합판을 사다가 3층까지 짊어지고 올라가, 톱으로 켜고, 다리를 붙이고, 천을 씌우고 해서, 간신히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 20개를 만들었다.
전등을 새 것으로 바꿔 달고, 바닥을 물청소하고, 벽을 깨끗하게 도배하고, 유리창을 말끔히 청소하여, (새 집들이하듯이)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그렇지만 즐겁게 노력 봉사하여 오늘의 상생 서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상생(相生)은, 오행(五行)에서 가저온 말로써 상극(相剋)과 대치되는 말이다. 金은 水를, 水는 木을, 木은 火를, 火는 土를, 土는 金을 낳게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상생의 관계로 되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안 되는 모양이다. 때로는 상극으로 서로를 각성시키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극을 지혜롭게 이겨냄으로써 더욱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파동을 통하여 우리는 절감했다.
상생의 관계에만 안주하다 보면 역경을 만났을 때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 쉽다. 그래서 우주(宇宙)는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을 준다. 이 고난의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여, 승화(昇華)시키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때를 지혜롭게 넘겨야 한다. 이 상생의 이치(相生之理)를 이번 파동에서 우리는 공부하는 것이다.
휴휴암 좌선 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유차별경 (於有差別境)에 입무차별정 (入無差別定)을, 위지좌 (謂之坐) 요.
어무차별경 (於無差別境)에 시유차별지 (示有差別智)를, 위지선(謂之禪)이다.
요란함에서 조용함으로 들어감을, 坐 라 하고
조용함에서 지혜를 내 쓰는 것을, 禪이라 한다.
요란한 것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용함에서 지혜를 만들어, 내가 쓸 때에 비로소
나의 삶이, 가치가 있고 윤택해지는 것이다.
상생 서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내실을 충실히 다져나가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우리 스스로에게 내리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문인화를 그렸고, 글씨를 썼는지 모른다. 노력하는 것은 결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각종 대회에서 많은 입선작과 특선작 들을 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포항시 서예대전에서, 대상 수상.
2017년 고운 휘호전, 우수상 수상 및 ‘제1회 상생 서원 회원전’ 개최.
2018년 고운 휘호전 최우수상 수상 및 ‘제2회 상생 회원전’ 개최.
2019년 경상북도전 우수상 수상 및 '제3회 상생 서원 회원전' 개최.
2020년 영남 서예전 국회의원상 수상 및 '제4회 상생 서원 회원전' 개최.
2021년 코로나 19를 견디면서 차곡차곡 쌓은 실력과 그 위용을 나타내려고, 설지 원장을 중심으로 한 우리 모두는 오늘도 쉬지 않고 정진을 하고 있다.
위덕대학교로부터 버림받고, 담당 선생님으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한 상생 서원 원생들은, 그간에 굶주렸던 사랑을 채우기라도 하듯 서로 돕고 아끼면서, 오늘도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펴고 있다.
나는 그들의 앞날에 밝은 서광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