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5분이면 충분하다
1.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정이 고조되어 있거나 급한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행동을 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감정이 수그러들고 난 다음이거나, 복잡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라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와 내가 대립되어 있으면, 나의 감정을 먼저 억제하고 평상심을 갖는 것이 급선무(急先務) 일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참을 인(忍) 자 셋 이면 살인(殺人)도 면한다고 했다.
말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쉽게 말 하지만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같이 사는 아내나, 내가 낳은 자식의 마음도 헤아릴 수가 없는데 하물며 낯선 사람이나,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입장이 되어 본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만의 이익을 챙기지 않고 서로 공평하게 상대한다면, 상대방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할 때에도 그 사람의 태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가 있으므로,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것만 가지고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고 특수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 내가 일본(日本)에 근무하면서 기계부품을 구매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상대방과 충분한 기술 설명이 끝나고 견적(見積)을 받아서 납기(納期)와 가격(價格)을 결정(決定)했다. 그런데 납품해야 할, 납기에 물건을 납품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이나 납기를 독촉했는데도 모르쇠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나의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한국 본사에서는 독촉이 자꾸 오는데, 일본에서는 구매가 안 되니 내 입장이 매우 난처하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의 물건을 살 수도 없다. 그 회사에서만 제작하는 특수한 기계부품이라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상대에게 화풀이를 해 대면서, 납기를 다시 정(定)하고,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틀림없이 납품하겠다는 다짐을 두 번 세 번 받고서야, 상대를 풀어주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일본인, 내 친구, 하시모토가 대포나 한잔 하자면서 퇴근길에 나를 선술집으로 불렀다. 얼큰하게 술기가 돌자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가 입을 연다. 낮에 있었던 물건 구매에 대하여 말을 한다. 외국에 와서 일면식도 없는 일본인과 거래하기 힘들죠? 그런다.
어떡합니까? 딴 방법이 없는 걸.
오늘 당신의 구매상담을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이 자리로 불렀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죄인(罪人)을 다루는 판사(判事) 같았습니다.”
당신은 잘잘못을 따지는 판사가 아니고, 물건을 구매(購買)하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데는 100% 상대방 만의 일이라고 잘라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도와준다면 납기도 지켜지고, 더 좋은 물건이 납품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상대가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전적(全的)으로 상대방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상대도 상대 나름의 사정(事情)이 있을 수 있어 늦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도움으로 납기를 단축할 수 있고 싸게 만들어질 수 있다면, 서로 좋은 일 아니겠어요?
오늘 그 사람이 당신과 상담(商談)을 마치고 돌아가서, 반드시 납기를 지켜야겠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삼아 당신과 더 좋은 관계를 가저야겠다, 고 다짐했다면 그는 공장에 돌아가서 철야(徹夜)라도 하면서 납기(納期)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돌아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조센진 바가야로! (한국사람은 싫어)라고 한다면 다음 납기는 또 늦어질 것이 뻔하고, 품질도 조악(粗惡)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과 더 이상 거래를 안 할런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상담은, 그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했을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번뿐만이 아니고, 이다음에도 또 그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한 약속(約束)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약속이 다 지켜지는 사회(社會)라면 Fax나 전화 한 통화로 끝내지, 굳이 비싼 경비를 들여 가면서 당신 같은 고급인력을 여기까지 오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속은 어긋나게 되어있고, 못 지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非) 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술이 번쩍 깨는 이야기였다. 아직까지 나는 철판을 생산하는 뜨거운 작업현장에서 기계만 상대하고, 사람들과의 대화는 소홀히 했었다. 부하나 상사로부터 지시나 받고, 보고나 하던 내가 상대방에게 호감(好感)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 서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고맙습니다. 하시모도 상”.
옳고 그름은 문제가 아니다. 아니 문제가 아니라기보다, 그 단계는 이미 졸업(卒業)을 했어야 한다.
나는 소학(小學)의 단계가 아닌, 대학(大學)의 단계,
그러니까 아마추어 단계를 졸업한,
푸로들의 경지에서 상대와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려면 차선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상대의 차선을 침범하면, 사고를 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차선이 여럿인 고속도로를 달릴 경우에는 자기 차선만 고집하는 게 아니고, 비어있는 옆 차선을 이용하여 추월도 하고, 때로는 양보도 해야 한다.
자기 차선만 고집하는 초보운전보다, 양보도 하고 추월을 하면서 운전하는 쪽이, 훨씬 빨리도 가고, 유쾌한 드라이브를 할 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철도(鐵道) 레일과 같은 1차선 사회도 있지만, 고속도로와 같은 다차선 사회도 있고, 비행항로처럼 전후 좌우 상하를 이용하는 입체적(立體的)인 사회도 있다.
어떤 사회가 좋으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사회에 처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그것도 한국에 있는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부품을, 구매하기 위해 파견된 한국 사람이다. 나는 순전히 이 일을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이곳으로 온 사람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일에 있어서는 달인(達人)이 되어야 했다.
1, 2, 3차의 어느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의 차선만 고집하지 말고 좌 우 차선도, 더 나아가 전후까지도 살필 수 있고, 종국(終局)에는 더 넓은 공간을 입체적(立體的)으로 보면서,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易地思之(역지사지)한다는 것은, 자기 차선만을 고집하는 초보운전을 벗어나, 양보도 하고, 빨리 가야 할 때는 빨리도 가고, 늦게 가야 할 때는 느긋한 운전도 할 줄 아는, 그러면서 흐름을 타면서 자유롭게 운전하는, 베테랑 운전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
반대로 구속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풀어 주는 것이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 그리고 상대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상대는 상대 나름대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인정해주어야 한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보다, 상대가 자유의지(自由意志)로 최선(最善)을 다하도록 내가 그를 도와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지사지는 누구의 힘이나, 선심(善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대를 인정(認定)함으로써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경쟁상대나 적(敵)으로 보지 말고, 동반자로 보는 것이다.
상대는 나와, 같은 곳을 향(向)하여, 같이 가고 있는, 나의 동반자(同伴者)로 보는, 그런 안목(眼目)이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누가 높고 누가 낮은, 그런 우열(優劣)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같이 사는 세계(世界),
보다 더 좋게 만들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 세계,
그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오직 개체(個體)로써만, 나는 존재(存在)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특별한 존재일 수가 없다.(I am not somebody.)
그 개체 중에 ‘나’라는 사람도 함께 끼어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근간(根幹)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