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5분이면 충분하다
2. 함께 살아가는 세상
어렸을 적에 보리타작을 하거나, 밀 타작을 할 때면, 하기 싫어서 도망 다녔다. 터럭이 모가지에 달라붙거나 옷 속에 들어가면 껄끄러워서 못 견디게 싫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어떻게 그 많은 타작을 다 할 수 있는지? 어디서 그런 인내력이 나오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모내기를 하면 장딴지에 거머리가 붙는다. 모르고 지내다 보면 거머리가 피를 많이 빨아먹고 배가 불러 스스로 떨어지기도 한다. 내 피를 빨아먹은 거머리가 너무 싫었다. 한번 거머리에 신경을 쓰다 보면, 거머리에 온통 신경이 쓰여, 모를 제대로 심지 못한다. 그런데 거머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애들 뿐이다. 어른들은 태연하게 모를 심고 못줄을 잡는다. 어른들은 거머리가 안 무나?
싫은 것과 필요한 것은 공존(共存)하는 모양이다. 여름이 더워서 싫다고 하면, 어른들은 더워야 나락이 잘 자란다면서 풍년(豊年)을 맞으려면 더워야 한다고 했다. 또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학교 가기가 힘들고, 눈을 치우려면 힘이 드는 데도, 어른들은 눈이 많이 와야 보리가 얼어 죽지 않는다고, 오히려 눈이 많이 와야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싫고 좋음이 있는 것은 철이 덜 들어서 그렇다. 철이 들지 않으면 자기가 보고 싶은 한쪽 면(面)만을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스스로 안다. 나이 들어 철이 들면, 보는 눈이 밝아지고 생각이 깊어져, 일의 단면(斷面)도 보지만 더 나아가 일의 전체를 살핌으로써, 한쪽 만을 주장하지 않고, 안 보이는 다른 부분까지 예측하거나, 아니면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이게 된다.
좀 불편해도 참아서 좋은 결과가 올 수 있다면, 참아 줄 줄도 알고, 어차피 내 것이 안 되는 줄 알면 양보도 할 줄 안다. 전체를 보지 못하면, 자기가 본 것이 전부(全部)인 양 착각하고,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우기면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전체(全體)에 비해 극히 일부(一部)다. 따라서 우리는 많이 알려고 노력도 해야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충분치 않고, 또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認定) 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 공동체는 나의 생각과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이익에도 중차대 하지만, 남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5년 동안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출근 길이 끊기던, 그때가 생각난다.
앞길이 캄캄했다. 매달 타는 월급으로 6 식구가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그것이 다 내 능력(能力)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수입원(收入源)이 끊기고 나니, 섬처럼 되고 말았다. 월급 이외의 수입은 제론(Zero)데, 딱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뻐쓰 정류장이 어디며, 뻐쓰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회사차만 이용했으니 세상 물정은 깜깜했다. 우리가 앞으로 살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돈을 버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회사 덕택에 아직까지 걱정 없이 살아온 것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야, 살아가는 실상(實狀)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야 세상 눈을 뜨는 것이다. 여태까지 살게 해 준, 전(前) 직장에 감사해야지, 원망하거나 미워하면 안 된다.
25년간이나 공짜로 밥 먹여 주었으면 됐지, 더 이상 무슨 미련을 떠냐?
25년간이나 남의 덕택에 살았으면, 앞으로 오는 25년은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물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대한 동방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1988년에 창업하여, 2013년까지 25 년간 일하다가, 2014년에 아들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자유스러운 몸이 되었다. 나의 주관으로 25 년간을 일했다.
월급쟁이 25년간은 명령(Order)을 받고 실천하는 삶으로, 가급적 쉽고 편하게, 그리고 공짜도 가끔 바라면서 산 이기주의의 삶이었다면, 회사를 운영하면서 산 25 년간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면서 산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나도 좋지만, 상대도 좋을까 하는. 상생(相生)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내 이익만 생각하면 물건이 팔리지를 않는다. 사가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 물건이 팔린다. 어떻게 해야, 상대가 사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해서 상대가 원하는 물건을, 상대가 원하는 가격에 만들어야 한다. 내 생각만 하고, 회사 운영을 하면, 물건을 제대로 만들 수도 없지만, 물건이 팔려 나가지도 않아 결국은 회사가 망하게 된다.
먼저 인정(認定) 해야 한다. 우리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사는 공동체(共同體) 안에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 수가 없다. 함께 모여서 사는 세상에,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 혼자 살려고 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여럿이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는 나만 이롭게 하려는 행동이나 생각은 남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이 단순하게 끝나지 않고, 더 커지고 단단해져서 업(業)이 되고, 나중에는 재앙(災殃)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면 좋은 영향을 남에게 끼치면, 그 영향이 커지고 더 좋아져서, 나에게 복(福)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법(法)이다.
마음을 올바르게 써야 행동이 올 바라 지고, 행동이 올바라야 결과도 올 바라 진다. 원인이 좋아야 결과가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인은 소홀히 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愚)를 범하면서 살고 있으니 문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힘든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절대적(絶對的)인 세상이 아니고, 상대적(相對的)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엄마밖에 모르고 살던, 애기 시절에는 누구나 행복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엄마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몸부림치면서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불행한 이유는, 불행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닌 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대적(相對的)인 세상을 절대적(絶對的)인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불법(佛法)을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한 초조(初祖)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면벽(面壁) 9년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조(二祖)에게 불안(不安) 한 네 마음을 가저오너라, 그러면 내가 그 불안한 마음을 고처주마,라고 했던 것도 상대적(相對的)인 우리들의 마음을 절대적(絶對的)인 마음으로 바꾸면 된다는 지적(指摘)이었다. 화두(話頭)에 “뜰 앞의 잣나무”라는 공안(公案)이 있다. 뜰 앞의 잣나무처럼 나도 자연(自然)에 순응(順應)하면서 살면 불행하지 않다. 나무나 풀 같은 식물(植物)은 자유의사(自由意思)라는 것이 없다. 자유의사가 없다 보니 어리 꽝을 부릴 이유(理由)도 없다. 법(法)대로 살아야 하는 우리지만, 법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이랫딱 저랫딱 하면서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다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불행(不幸)하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살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하기 힘들어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는 고통(苦痛)이 따른다.
나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내가 어리광을 부리면서 살고 있다는 신호(信號)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고통은 싫어할 것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상대를 사랑해야 하고, 존경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상대를 존경해야 한다. 받고 싶으면 먼저 주고, 칭찬받고 싶으면 내가 상대를 칭찬을 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기차는 기찻길 위를 달릴 때에만 그 기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행복하다.
기차가 레일이 아닌 도로 위에 있으면, 기차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아무 곳에도 쓸데없는 장애물이 되고 만다. 우리는 지켜야 할 법(法)을 지키고,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할 때에만, 우리에게 자유가 오고 평등한 사회가 되어, 번영(繁榮)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